회룡사(의정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회룡사(의정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회룡사(의정부)

6.3Km    2025-07-18

경기도 의정부시 전좌로155번길 262

사패산 산중에 위치한 회룡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태종 이방원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 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 제7호이며, 비구니 절이다. 회룡사는 흔히 도봉산 회룡사로 불리지만 정확히는 도봉산 한쪽 끝 봉우리인 사패산에 위치한 절로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회룡역 1번 출구에서 나와 회룡탐방지원센터를 출발점으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당도한다. 회룡사는 681년(통일신라 신문왕1) 의상이 창건하고 법성사(法性寺)라 하였다. 이후 936년(통일신라 경순왕 10) 동진국사가 중창하였고, 1070년(고려 문종 24) 혜거국사가 삼창하였다. 법성사가 회룡사로 불리게 된 것은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인연 때문인데, 첫 번째 유래는 1384년(고려 우왕 10)에 무학대사가 절을 중창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는 무학과 함께 3년간 창업 성취 기도를 올렸는데 태조는 석굴암에서 무학은 무학굴에서 각각 머물렀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병마사가 되어 요청으로 출정가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했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찾아와 회룡사라 했다 한다. 이와 관련해 이성계가 머물렀다는 석굴암은 회룡사의 부속암자로 남아 현재까지 전해지는데, 김구가 상해로 망명하기 전 피신해 은신처로 삼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구는 해방 후 석굴암에 들러 친필을 남겼는데 입구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무학이 머물렀다는 무학굴은 현재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두 번째 설화는 1403년(조선 태종3)에 태조가 함흥차사 끝에 노여움을 풀고 귀경한 뒤, 이 절로 무학을 찾아와 무학이 회란용가(回鸞龍駕)를 기뻐하여 회룡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회룡사 입구 사거리 부근에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상봉지 표지석이 있는데 함흥차사로 꿈쩍도 않던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한양 환궁길에 오르니 태종이 이곳까지 나와 친히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이 일대의 마을을 전좌(殿坐) 마을이 되었고, 회룡사의 주소지도 전좌로다.조선의 건국 때부터 조선왕실과 깊은 인연을 이어온 회룡사는 1630년(조선 인조8) 비구니 예순이 중건하였고, 1881년(조선 고종 18)에는 최성이, 1938년 비구니 순악이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이후 6.25 전쟁 때 불에 타 크게 손실된 절을 1954년 비구니 도준이 중건하고 불사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회룡사오층석탑과 회룡사석조,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의정부회룡사신중도가 있다. 그 중 6.25 전쟁의 피해로 복원된 석탑과 사찰의 큰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석조는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오층석탑은 의상의 사리 1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하나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작품이라 보기 어렵고 조선시대의 것이다. 또 1887년 상국 신씨가 부모를 위해 발원해 제작된 신중도는 당시 남양주 흥국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불화승인 경성당 응석의 작품이다.

삼천사(서울)

삼천사(서울)

6.4Km    2025-04-08

서울특별시 은평구 연서로54길 127 (진관동)

삼천사는 661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그 규모가 대단히 커서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한다.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지만 최근의 고고학적 조사를 거치면서 ‘三千’이 아니라 ‘三川’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삼천사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집결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전해지는 등 병화(兵禍)를 피하지 못하였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 길상터에 진영대사가 다시 복원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성운스님이 주석하여 경내에 있는 천년고불 마애여래입상(보물 제657호)을 보물로 지정받으면서 순차적으로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원래의 절터를 대상으로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를 전개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실들을 찾아내는 성과를 얻었다.

올리브영 공릉역

올리브영 공릉역

6.5Km    2024-03-24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92길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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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6구간] 평창마을길

[북한산 둘레길 6구간] 평창마을길

6.5Km    2025-06-23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산책로이다. 둘레길은 전체 71.5㎞ 중 서울시 구간과 우이령길을 포함하여 2010년 9월 7일 45.7㎞를 개통하고, 2011년 6월 30일에 나머지 25.8㎞ 구간을 개통하였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걷는 둘레길은 물길, 흙길, 숲길과 마을길 산책로의 형태에 각각 21가지 테마를 구성한 길이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둘레길을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보존하는 길, 그리고 역사와 문화,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21가지 테마 중 6구간인 평창마을길은 광해군 때 시행하던 대동법에 의해 조세를 관리하던 선혜청 중에서 가장 큰 창고인 평창이 있던 곳이다. 선혜청이 있던 자리로서 재물이 모이는 땅이라는 이곳의 형세를 생각할 때 걷는 걸음마다도 신묘한 기운이 서린 듯하다. 평창동마을과 사자능선이 함께 어우러진 데다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 그리고 관악산이 파라노마처럼 펼쳐져 있어 걷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이 가득한 구간이다. 거리는 총 5.0㎞이며,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청수장

청수장

6.5Km    2024-02-16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로 237-2

청수장은 우이신설선 정릉역 2번 출구 정릉삼거리 정릉도서관 앞에 있다. 청수돼지갈비와 청수면옥이 정릉 골목으로 옮기면서 합쳐진 식당이다. 외관은 현대식 기와지붕 형태로 간판만 없으면 일반 주택 건물처럼 보인다. 매장 외부엔 2대째 내려오는 매장 안내와 스크랩, 메뉴판이 붙어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이다. 대표 메뉴는 돼지갈비와 냉면이다. 사이드 메뉴로는 차돌된장찌개가 있다. 내부엔 셀프 코너가 있어 밑반찬을 원하는 만큼 갖다 먹을 수 있다. 고기는 참숯을 사용하여 굽는다. 근방에 정릉 유적지와 근린공원이 있어 연계 관광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