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Km 2025-02-06
서울특별시 강남구 학동로45길 7
닭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미 잘 알려진 맛집으로, 국물 뼈 있는 닭발뿐만 아니라, 무뼈닭발, 닭발, 오징어 볶음 등 다양한 메뉴를 이용할 수 있다. 전지적 참견시점 53회, 굿모닝 대한민국 894회에 소개된 맛집으로, 동네 슈퍼마켓 느낌, 학교 매점 느낌을 받게 하는 인테리어로 구성되어 있다.
3.3Km 2025-04-03
서울특별시 서초구 신반포로 176
02-6282-6262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가장 세련되고 품격있는 럭셔리 호텔로 재탄생했다.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하여 한국의 미를 담아 창조한 웅장하고 세련된 공간, 저명한 식음 컨설턴트들과 국내외 최고 쉐프들이 선보이는 독창적이고 품격 높은 미식 경험, 옛부터 뿌리깊게 내재된 한국인의 공경심과 배려심에서 우러나오는 섬세하고 진정성 있는 서비스, 고객의 취향에 맞춘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와 심신의 건강을 케어해주는 웰니스 프로그램 등으로 고객이 열망하는 그 이상의 재미와 감동,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는 진정한 럭셔리의 정수를 선보인다.
3.3Km 2024-12-31
서울특별시 서초구 신반포로 176
02-3479-1027
백화점에서 맛보는 프랑스 현지의 맛, 한남동 프렌치 클래식 콘셉트 1호점 Grand amor(그랑 아무르)와 가벼운 비스트로 콘셉트의 Epicerie collage(에피세리 꼴라주)를 본점으로 둔 세 번째 레스토랑 Grand collage(그랑 꼴라주). 이곳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부야베스나 니스와즈 샐러드, 프렌치 어니언수프 등 백화점에서 맛보기 힘든 음식을 현지의 맛 그대로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대표 메뉴는 꼴라주 오리지널 함박스테이크로 한우를 갈아 만든 패티와 이틀 동안 끓인 데미글라스 소스, 로스팅 한 감자 속에 버섯 향 버터를 채워 가니쉬로 제공한다.
3.3Km 2025-01-06
서울특별시 서초구 신반포로 176
02-3479-1967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터미널과 연결된 신세계백화점 식당 층, 그 안에 35년 전통의 샤부샤부 국수 전골집 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끓는 육수에 채소와 소고기를 넣으면 국수 전골 완성된다. 생면이라 익히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간 맞추기까지 직원이 모두 해주니 고객은 국수가 익기만 기다리면 된다. 대표 메뉴는 생면으로 즐기는 샤부샤부와 국수 전골이다. 고기는 비린 맛이 전혀 없고, 부드러우며, 소스와 잘 어우러진다. 들어가는 채소는 종류가 다양하고, 신선해 더 맛있는 육수를 만들어낸다.
3.3Km 2024-12-17
서울특별시 서초구 신반포로 176
02-3479-1901
베트남 음식 전문 비스트로, 프렌치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정갈한 가정식 베트남 요리가 어우러진 타마린드는 2009년 논현동의 미스사이공을 시작으로 2013년 한남동 타마린드 본점, 2016년 강남 신세계점 11층 전문 식당가에 2호점을 오픈했다. 이곳 월남쌈은 베트남인들이 호주로 이주할 때 만든 호주식으로 베트남 현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메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두 종류의 월남쌈은 양념에 미리 밑간한 후 조리 시 주방에서 직접 제조한 바비큐 소스를 곁들여 제공한다.
3.3Km 2021-03-15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로 112-5
02-2294-6995
연예인들도 많이 방문하는 맛집이다. 대표메뉴는 등갈비다.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있는 한식전문점이다.
3.3Km 2024-01-22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로 57-1
후암편백은 세계사대진미로 꼽히는 이베리코 흑돼지로 편백나무틀로 건강하게 기름기를 쏙 뺀 찜요리 전문점으로
그 외 샤브샤브, 밀푀유나베 등 건강식 요리와 주류를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요리 전문점이다.
음식들이 전체적으로 담백하여 건강식으로 먹기 안성맞춤이다.
3.3Km 2025-03-19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344
광희문은 1396년(태조 5년) 도성 창건 때 동남쪽에 세운 소문이다. 광희문은 실질적인 도성의 남소문으로 이를 흔히 수구문으로 불렀다. 청계천이 흘러 나가는 곳에 세워진 수구가 거리상으로는 광희문보다는 동대문이 가깝지만, 남소문이 장충단공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따로 있었기 때문에 편의상 수구문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수구문은 실제로는 시구문으로 이용되었으니,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 내의 장례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도성과 궁성이 파괴될 때 광희문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숙종 때 기록을 보면 남소문과 광희문의 자리를 혼동하기도 하고, 성문 터과 군영의 위치 확인도 어려울 정도로 파괴된 도성을 수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희문은 도성 수축이 이루어진 이듬해인 숙종 37년(1711)에 중건에 착수하는데, 수구문을 다시 쌓고 아울러 문루도 조성하게 하였다. 수구문은 심하게 파괴되어 석축을 새로 개수하는데 시일이 많이 걸리므로 서대문 지역을 담당하는 아문에 목재를 넘겨주어 돈의문 문루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성문이 수축되고 그 이후 언제 문류가 중건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1719년(숙종 45)에 수구문은 옛 이름이 광희문이니, 해당 군문에서 액호를 써서 걸 것을 요청하자 대리청정하던 세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영조 때에 도성의 문루가 없는 성문을 중건하게 되었는데 그 대상에 광희문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1759년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성도에는 당시 문류 유무에 따라 성문을 그렸는데 수구문에는 문루가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광희문은 숙종 때에 재건된 것으로 확인된다. 광희문은 일제가 전차궤도를 부설하면서 성곽을 철거할 때도 문과 문루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6·25 전쟁으로 문루가 파고 된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 후 1975년에 도로 중간에 위치하게 되어 원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옮기는 이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1975년 11월에 준공되었다. 광희문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보면 1624(인조 2)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수구문을 통하여 도망갔고, 병자호란(1636)때에는 임금이 역시 이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은 옥수동 두모포나루로 한강을 건너 광희문을 통하여 인현동에 있던 지정숙소인 동평관으로 향하였다. 성문은 서울성곽의 다른 소문과 같이 장방형 무사석으로 높게 축조한 육축을 마련하고 육축 가운데 홍예를 앞뒤로 설치하여 통로를 만들고, 그 위에 문루를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