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25호텔 광주충장로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넘버25호텔 광주충장로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넘버25호텔 광주충장로점

5.6Km    2024-07-31

광주광역시 동구 천변우로 427 (불로동)
010-9688-9653

양림미술관

양림미술관

5.6Km    2025-03-20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 70 (양림동)

광주광역시 남구청에서 관리하는 미술관이다. 양림미술관이라는 이름은 근대 역사 문화 중심인 양림동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건물은 한옥 형태이며 지하와 지상에 각 1층씩 전시실이 운영되고 있다. 주민과 작가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대관을 원하는 경우에는 남구청에 문의하여 대관할 수 있다.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

5.6Km    2025-03-20

광주광역시 남구 백서로 13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는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사립학교로 1908년 배유지(Dr. Eugene Bell) 선교사에 의해 설립됐다. 교육사적·종교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축물을 보유한 이곳은 광주 지역 근대건축의 변천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홀(등록문화재 제158호)이다.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붉은 벽돌이 아니라 회색 벽돌로 지은 것이 특징으로, 중앙의 현관 포치 위쪽에 박공을 두어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배유지기념예배당(등록문화재 제159호)은 학교 설립자인 배유지 선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건물로 규모는 작고 아담하지만, 장식적인 요소가 많고 건축 기법이 독특하고 조화롭다. 윈스브로우 여사의 생일 헌금으로 건축한 구 수피아여학교 윈스브로우홀(등록문화재 제370호)은 좌우 대칭의 중복도형으로 정면 출입구에 설치한 아담한 돌출 현관 포치가 인상적이다. 학교 후문 안에는 1995년 건립한 광주 3·1 만세 운동 기념비가 위치해 있다. 앞면에는 ‘광주 3.1 만세 운동 기념’이 새겨져 있고, 뒷면은 광주 3.1 만세 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에 옥고를 치른 수피아 학생들의 이름을 새겨 길이 기념하고자 했다.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비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비

5.6Km    2025-08-07

광주광역시 남구 백서로 13

광주는 일제강점기 시절 광주학생운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독립운동이 펼쳐진 고장이다. 이러한 고장에서 3·1 만세운동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러한 광주지역의 3·1 만세운동을 기념하고 당시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비이다. 넓이 4㎡ 길이 7m로 3·1 운동 때 여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는 형상이다. 1995년 5월 10일에 건립한 이 기념비는 광주 수피아여고 후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앞면에는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이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은 1919년 3월 10일 광주 3·1 만세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에 옥고를 치른 수피아여고 학생들의 이름을 새겨 길이 기념하고자 했다. 기념비에는 박순애, 이태옥, 김양순, 윤혈녀, 김덕순, 조옥희, 이금봉, 하영자, 강화선, 이라혈, 최수향, 김만순, 홍순해 등 23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으며, 옆면은 추모시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역사의 별이 되어라』 천추에 이름 석자 누구나 남기는가, 기미년 3·1 운동 선두에 서서 구국의 일념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태극기 앞에 두고서 독립만세를 외쳤네. 일제의 총칼 앞에 나라가 침탈 당하자 자유 없는 속박에서 사느니보다 사슬을 끊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네. 모진 고문을 당하여도 이겨낸 고결한 애국 얼이 역사의 별이 되어 무궁토록 빛나네.

최승효가옥

최승효가옥

5.6Km    2024-12-04

광주광역시 남구 양촌길 29-4

최승효가옥은 양림산 동남쪽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가옥이다. 1920년대 사동 최부자인 최명구의 큰아들 최상현이 건축하였다. 건물은 동향으로 지었으며, 주요 건축 목재는 압록강을 통해 운반된 금강송이며 마루는 옷칠을 하였다.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골기와는 강진 옹기로 주황색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가옥은 훗날 최상현의 사업 실패로 매각되었는데 최승효가 매입하였다. 1993년 최승효가 죽은 이후에는 아들인 최인준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다. 최인준은 현대미술가이자 비디오아트 백남준의 제자이다. 다양한 수목이 울창하고 석간수와 집의 후원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조망이 특별하다. 안채인 자이당은 정면 여덟 칸, 측면 네 칸의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자형 평면의 팔작집이면서도 우측의 경사진 부지를 자연 그대로 이용하여 1퇴 공간의 반지하층을 구성하여 율동감을 주었다. 좌측으로도 1퇴를 개방공간으로 주어 비대칭의 평면과 입면을 형성하여 단조롭지 않게 하였다. 서향인 뒤쪽은 너비 60m의 마루를 두르고 미닫이 창문을 만들어 서쪽의 빛을 일단 차단시키고 있으며, 미닫이 창문 때문에 방이 어두워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벽면 윗부분에 띠판창을 두었다. 연등천장인 대청을 제외하고는 다락을 두었는데 이곳에 독립운동가 등을 피신시켰다고 한다. 다락 외부벽에는 완공을 두어 다락안의 채광을 돕고 있다. 기단은 우측의 반 지하 부분을 제외하고는 1cm 정도 높인 뒤 2단 원형 주초석을 써서 모양을 살렸다. 최승효가옥은 행사가 있을 때에만 개방되어 탐방이 쉽지 않다.

충장로

충장로

5.6Km    2025-03-21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로 37 (충장로1가)

서울에 명동이 있다면 광주에는 충장로가 있다. 도심이 커지면서 곳곳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번화한 새 거리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광주의 중심은 충장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충장로는 읍성시대에 남문과 북문을 잇는 광주의 대표적인 남북대로였고 성안에 있어서 시내라고 불렀다. 충장로에 상가가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 직후인 1911년 일본인이 현 산업은행 건너편에 ‘여목’이라는 상호로 일용 잡화점을 낸 것이 효시이다. 그 후 충장로 1가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상가가 들어섰고 일본인들이 충장로의 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구 도청 자리에 일제 총독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충장로’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김덕령의 시호를 딴 것으로 충장로의 최초 가로등은 석유 등잔불이었다고 한다. 일찍이 양장, 양복, 요식업, 서비스업 등이 집약되어 있어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였고, 당대에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던 충장로는 자연스레 유행의 거리, 젊음의 거리로 불렸다. 충장로를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다방’이다. ‘우다방’은 충장로가 가장 번성기를 누렸던 7~80년대에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우체국을 그 시절에 유행했던 다방에 빗대서 붙인 이름이다. 1963년에 완공되어 그 당시에는 드물게 냉, 난방을 갖춘 대형 건물이었던 우체국은 가난한 연인들이나 학생들에게 둘도 없는 만남의 장소였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위 군중들의 예비 집결지, 정보 교류처, 대피처로 광주의 역사와 함께했던 ‘우다방’은 지금도 자신의 주장을 알리려는 시민들이나 각종단체들이 행사나 집회를 여는 곳이다. 2004년부터 매년 10월, 광주를 대표하는 번화가 충장로의 특징을 살린 추억의 충장축제가 열린다. 축제의 가 장 큰 볼거리인 ‘충장 월드퍼레이드'에는 광주 13개 동에서 서로 다른 테마로 퍼레이드에 참석하며 경연 퍼레이드, 영화 콘셉트 퍼레이드, 아시아 국가 퍼레이드 등 다양한 퍼레이드가 쉴 새 없이 진행된다. 또한, 70~80년대 충장로의 모습을 재현한 추억의 테마거리도 조성된다. 옛날 다방에서 차를 마시거나 흑백사진관에서 멋진 흑 백사진을 찍는 등 MZ세대를 비롯한 다양한 세대가 즐거운 레트로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축제 본연의 특성인 놀이성, 일탈을 통한 해방감, 공동체로서의 대동감을 느낄 수 있다.

전일빌딩245

5.6Km    2025-03-20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

전일빌딩 245 Bl는 역사적 현장으로서의 건축형태와 공간을 245로 상징화하여 전일빌딩의 의미를 되새기고 미래로의 스토리텔링을 담고자 하였다. 245 정중앙의 원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의 선명한 탄흔을, 4가지 컬러 구성은 전일빌딩의 콘텐츠 공간을 형상화하였다. 전일빌딩에 헬기 사격이 가해졌다는 사실은 수많은 목격자와 증거, 탄흔이 기억하고 있다.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245개 탄흔이 가장 명확한 증거이며 헬기 사격을 증거 하는 문서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전일빌딩 245의 탄흔을 지속 가능하게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5·18 민주화운동을 후대에 온몸으로 알리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뒹굴동굴

뒹굴동굴

5.6Km    2025-08-06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 410 (사동)

뒹굴동굴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방공호 지하시설이다. 폭 약 2미터에 길이 30미터 정도로 무기고와 화약고로 사용되었다고한다. 광주 도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미국의 공습으로부터 대피시키기 위해 1940년대 광주 사직공원 밑에 방공호를 건설하였다. 일본인 거주 지역에 가깝고 양림산의 지반이 단단하여 안정된 대피가 가능했기 때문에 일본은 방공호를 건설하면서 당초에는 4곳의 입구를 두고 가운데 광장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단단한 화강암 지반으로 인하여 공사 진척이 느려져 완공되지 못한 채 전쟁이 종료되었다. 현재는 일제 강점기 잔재물로서 근대 역사 문화 유적지로 운영 중이다. 근처에는 양림동역사문화마을, 통기타 라이브 카페거리등이 있다.

오방 최흥종 기념관

오방 최흥종 기념관

5.6Km    2025-07-14

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 64 (양림동)

오방 최흥종 선생은 민족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그리고 선교운동가로서 평생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빈민과 한센병 환자의 아버지로서 헌신하신 오방선생의 섬김과 나눔의 정신은 연대와 협력, 나눔과 공유, 관용과 배려의 광주 공동체 철학 및 민주화를 위해 온 시민이 희생을 감내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이에 광주시 남구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오방 최흥종 기념관 건립하여 오방선생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자 하였다. (재)광주기독교청년회 유지재단에서 설립자이기도 하신 오방 최흥종 선생의 삶과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상설전시와 기획전시, 영상실로 이루어져 오방 최흥종 선생의 삶을 깊이 있게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해남성내식당

해남성내식당

5.6Km    2024-02-01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로 21 우리덕이

해남성내 식당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애 있는 한우된장샤부샤부 맛집이다. 된장 육수에 각종 채소와 두툼하게 썰어져 나온 고기를 익혀 먹는다. 특히, 부추 간장, 김조림과 함께 고기를 먹으면 맛의 궁합이 잘 맞는다. 마무리 된장죽도 맛이 일품이다. 그 외에도 육회, 생고기, 육회비빔밥이 있다. 주말과 저녁 시간에는 손님이 많아 예약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쌀, 배추, 고춧가루를 모두 국산만 사용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테이블 간격이 넓고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어 모임 장소로도 손색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