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Km 2025-04-08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대구시 불로동과 입석동 구릉 서남면에 있는 수십 기의 크고 작은 무덤들이다. 무덤의 지름은 15∼20m, 높이 4∼7m 정도가 보통이며,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4 벽을 쌓고, 판판하고 넓적한 돌로 뚜껑을 덮은 직사각형의 돌방이 있으며, 그 위에 자갈을 얹고 흙을 덮었다. 껴묻거리(부장품)로 금제 혹은 금동제 장신구와 철제무기 무늬를 새긴 토기 등 많은 출토물이 있다. 이 무덤들은 대개 5세기 전후경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며,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세력의 집단무덤으로 추측한다. 불로동 무덤들은 위치가 구릉이라는 점, 무덤 내부가 돌무지무덤과 비슷하게 깬돌로 지은 점, 그리고 돌방이 지나치게 가늘고 긴 점에서 낙동강 중류 지역 계통임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유물의 형태나 질이 신라와 유사하여 이 지역 세력의 복잡한 문화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출처 : 국가유산청)
15.4Km 2025-03-17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산 4
옻골동산이 있는 자리는 2001년에 건설폐기물 처리시설 용도로 지정되었지만, 사업이 무산되면서 도심 속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황량한 땅에 축구장, 다목적구장, 음수대, 벤치 등 다양한 시설을 세웠다. 인근 함지산에서 옻골동산으로 넘어오는 등산 코스가 있어 등산객들의 방문이 잦다. 특히 공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멋지며, 여름이면 잔디광장과 푸른 숲이 인상적이다. 시민들의 소풍 장소 및 단체구기를 위한 장소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15.4Km 2025-04-21
대구광역시 북구 동암로38길 29-31
053-323-2818
대구 북구에 위치한 별미춘천닭갈비는 춘천식 닭갈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전문점이다. 신선한 닭고기와 아삭한 채소를 매콤한 양념과 함께 볶아내어, 깊고 진한 맛을 자랑한다. 특히, 넉넉한 양과 푸짐한 재료로 가성비가 뛰어나며, 다양한 사이드 메뉴도 함께 제공되어 만족도가 높다. 기본 닭갈비 뿐 만 아니라 낙지 닭갈비, 쭈꾸미 닭갈비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가게 내부도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도 적합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인근에 위치한 대구 북구청과의 접근성도 좋아 찾기 편리하다.
15.4Km 2024-11-26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47길 38
053-986-7424
이시아호텔은 복합산업단지 이시아폴리스 최중심에 위치한 신개념 호텔로,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감성적 디자인이 돋보인다. 복합테마파크는 이시아롯데몰 옆에 위치하고 있어 영화와 쇼핑, 외식, 문화시설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대구국제공항에서 10분, 팔공산 IC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또한, 봉무동 팔공산 도입에 자리하여 주변에 문화재와 유적지, 관광지, 휴식공간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 즐길거리와 휴식이 공존하는 도심 속의 문화공간이다.
15.4Km 2024-12-31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220-2
(주)프랜푸드는 1996년 참마음식품을 설립한 이래 “맛있땅, 즐겁땅”이라는 슬로건 아래 2004년 땅땅치킨 1호점을 오픈하였고, 2007년 (주)프랜푸드를 설립하였으며, 현재 전국에 300여 점의 매장을 운영하므로 지역의 유망 치킨프랜차이즈 회사로 성장하였다. 2018년 9월 오픈한 땅땅랜드는 세계최초의 치킨 만들기 테마파크로, 2019년에는 연간 6만여 명의 국내외 체험객이 다녀갔으며, 동남아 관광객도 2만여 명이 찾았다. 땅땅치킨랜드는 관광공사의 대구 10대 체험관광지, 해외인센티브관광 지원대상 관광지, 대구웰니스체험관광지, 한식체험프로그램지원사업자로 선정되었으며, MBN의 드라마 <최고의 치킨>의 촬영지, 대만, 태국, 홍콩방송 등지에서 촬영하는 등 인기 체험테마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동남아 7개국에서 설문조사 결과 대구 체험관광지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단산지를 끼고 있는 봉무레포츠공원, 섬유박물관, 방짜유기박물관, 동화사, 시민안전테마파크, 팔공산 케이블카 등 함께 둘러볼 곳이 많아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15.5Km 2025-03-24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227 (봉무동)
섬유산업은 가내수공업적 전통산업에서 현대 산업 사회로의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성장기에 섬유산업이 중심 역할을 하였고, 대구는 그 한가운데서 섬유를 기반으로 성장한 ‘섬유도시’다. 이것이 대구섬유박물관을 건립한 이유의 하나다. 섬유는 탄소섬유, 나노섬유 등 섬유소재의 발전으로 과학, 의료, 첨단산업 등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미래산업이기도 하다. 대구섬유박물관은 세계에서도 드문 섬유와 패션을 아우르는 종합박물관으로, 패션, 산업, 신소재 등 섬유의 역사와 특성에 관해 한 공간에서 전시하고 있다. 또한 공감할 수 있는 전시와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편안한 문화휴식처가 되고 있다. 대구섬유박물관은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새로운 도약에 다리가 되고자 한다. 첨단으로 향하는 섬유·패션의 발전을 기업을 비롯한 섬유분야와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추억을 떠올리고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면 섬유박물관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15.5Km 2024-05-21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39-4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은, 세조 2년인 1456년 사육신들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멸문의 화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박팽년이 혈통을 보전하게 된 이유는 당시, 박팽년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이씨 부인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뱃속에 든 아이까지도 아들일 경우 죽이라고 명하였고, 이씨 부인은 친정인 묘골에 내려와 살다가 아이를 낳으니 아들이었다. 혈손을 보전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데리고 있던 노비가 딸을 낳자 서로 바꾸어 그 이름을 박씨 성을 가진 노비라는 뜻으로 [박비]라고 짓고. 아들을 노비로 둔갑시켜 혈통을 보전한 것이다. 박비가 장성한 후인 조선 성종 때, 아버지와 동서지간이던 이극균이 경상 감사로 내려와 자수를 권유하자 임금을 찾아가 박팽년의 자손임을 이실직고하였다. 성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특사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름도 박일산으로 고쳐 주었다. 이리하여 은둔의 세월은 막을 내리고 묘골이 충절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도 마을 한옥들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잘 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에는 묘골 박씨들의 전통을 자랑하는 육신사와 달성 태고정, 도곡재, 달성 삼가헌 등의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15.5Km 2024-08-23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15
달성 삼가헌은 사육신의 한 분인 충정공 박팽년의 자손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박씨마을 묘골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여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다. 넓은 터에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별당,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현판으로 걸어 삼가헌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뒤 그의 아들 광석이 1783년 이웃하고 있는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이며, 안채는 사랑채를 거쳐야 출입을 할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대략 트인 'ㅁ자형'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안채로 드나드는 중문채와 곳간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사랑채는 'ㄱ자형' 평면으로 넓은 대청과 골방이 딸린 온돌방 2칸, 마루방, 청지기방을 두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 개방된 툇마루 등으로 꾸몄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의 서쪽으로 장독대, 곳간채, 안변소가 자리 잡고 있다. 삼가헌의 백미, 별당인 하엽정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원래 4칸 규모의 'ㅡ자형'이었던 건물을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하였다.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이라 하엽정이라는 현판과 함께 방앞 처마에는 파산서당 편액을 같이 볼 수 있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을 두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여름철 연못에 연꽃이 피고 주변 배롱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풍광이 삼가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