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Km 2024-02-29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로 76
청솔향기는 불향이 가득한 쭈꾸미가 맛있는 식당이다. 이름처럼 커다란 소나무가 있고 잘 꾸며진 정원이 있다. 내부의 큰 창문으로 정원이 내다보여서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자리도 있다. 쭈꾸미볶음부터 쭈꾸미삼겹, 쭈꾸미차돌, 제육볶음, 오리훈제 등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다양해서 음식 선택의 폭이 넓다.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조리한 음식의 맛도 좋지만, 양도 푸짐하다.
7.7Km 2024-11-20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로37번길 175 (미사동)
미사리 승마공원은 승마레슨, 승마체험이 가능한 전문 승마장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과 놀거리가 함께 있는 곳이다. 실내 공간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 낚시 놀이, 블록 놀이, 미니트램펄린이 있고, 실외에는 염소, 사슴, 라쿤, 공작새, 타조 등의 여러 동물이 있어 먹이 주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승마체험은 수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간 간격을 두고 운영하여 안전하게 전문가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승마체험 시에는 안전을 위해 안전 모자와 조끼를 착용해야 하며, 말을 만지고 쓰다듬으며 교감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말에 올라가 원형 마장을 세바퀴 도는 체험을 한다. 그리고 나서 마방으로 가면 여러 말들의 이름과 나이, 성격 등이 적힌 표지판을 보며 말과 먹이 먹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경기도는 학생승마체험 지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관내 초중고 학생 및 학교 밖 청소년들은 자부담금 일부를 제외하고 승마 체험 10회와 보험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 미사리 승마공원도 경기도 유소년 전문 승마장으로 선정되어 많은 지역 청소년들의 승마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근교에 위치해 쉽게 방문할 수 있으며 말을 만져도 보고, 먹이도 주고, 직접 타볼 수도 있는 말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7.8Km 2025-06-04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 343 (압구정동)
강남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은 우리나라 유통업계에서 명품관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본격 도입한 곳이다. 청담동과 함께 하이엔드 패션의 메카 역할을 하며 해외 명품들이 한국 시장 진출 시 가장 먼저 입점하는 백화점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의 본점과도 같은 곳으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EAST 관과 WEST 관으로 구분되어 있다. 2004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WEST 관과 EAST 관으로 변모했다. 그중 갤러리아백화점 패션관에서 명품관으로 승격된 WEST 관은 물고기 비늘을 형상한 외관으로 밤이 되면 색이 변하면서 영상을 투사한다. WEST 관과 EAST 관에는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으며, 국내외의 최신 패션 경향 및 시즌 상품을 한 발 앞서 소개하는 안테나숍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입점 브랜드로는 구찌, 루이비통, 미우미우, 프라다 등이 있다. 2016년 이후 매해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익스테리어를 꾸미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6년 불가리를 시작으로 까르띠에, 디올, 펜디 등의 브랜드들과 콜라보를 통해 익스테리어를 선보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명품 백화점으로 명성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7.8Km 2024-10-30
서울특별시 중랑구 봉화산로 109-8
성덕사는 중랑구 상봉동 봉화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주택가가 밀집한 골목에 있다. 1957년에 세운 사찰로 경내 건물로는 대웅전, 종각, 칠성각, 삼신각, 미륵전 등이 있다. 주택가에 있어서 주민들의 신앙생활과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곳은 원래 애동지 전설이 내려오는 터가 센 땅이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 노인이 산 중턱에서 나무를 했는데, 베어도 베어도 나무가 다시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마을로 도망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는데, 탁발시주를 위해 마을에 들렀던 한 스님이 그곳은 많은 사람의 원한이 서린 곳이라서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치성을 드리고 애동지(음력 11월 초순 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지 말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아이가 넷인 과부만은 스님이 당부한 대로 매년 치성을 올렸다. 이후 마을에 전염병이 크게 번졌을 때, 과부의 아이들은 아프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다. 과부는 자기가 죽기 직전 자손들을 모두 불러 치성을 올려야 한다고 당부하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45년 광복 이후 이 일대에 사람이 모여들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공사를 하면 서까래가 무너지거나 기둥이 내려앉았다고 한다. 조계종에서 절을 지을 때도 목재를 실어 나르던 황소가 죽고 인부가 여럿 다쳤을 정도였는데, 절이 완공된 이후에는 불의의 사고로 다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성덕사가 치성을 대신 드리기 때문이라고 마을 토박이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