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Km 2025-06-19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막로24번길 115 (석수동)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위치한 한양갈비는 갈비와 정통함흥냉면의 장인이 30여 년 넘게 업계에서 묵묵히 지켜내며 영업하고 있는 곳이다. 인기메뉴는 돼지갈비와 소갈비로, 고기를 숯불에 구워서 먹는다. 갈비는 생갈비와 양념갈비 중에 택하여 먹을 수 있으며, 생갈비는 신선하고 두툼한 고기에 육즙이 많아 연하고, 양념갈비는 단맛과 짭짤한 맛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감칠맛이 난다. 고기의 질이 좋아 부드럽고 양념이 잘 배어 있으며, 양도 푸짐하다. 이곳의 또 다른 인기메뉴인 정통함흥냉면은 담백하고 깔끔한 육수의 맛과 가늘면서 쫄깃한 면발이 특징이다.
10.3Km 2025-05-19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부천시 남쪽과 시흥시를 연결하는 여우고개는 이 고개를 통해 시흥에서 부천시 소사 우시장으로 소를 끌고 넘어 다녔으며, 또한 부평 황어장을 가기 위해 넘어 다니기도 했기에 한자로 여우[如牛]고개라고 해서 소고개라 해석하기도 하며, 산의 형세가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므로 소와 같다 하여 여우고개라 했다는 설이 있다. 여우는 여위다가 변화된 것으로 보아 여윈고개, 즉 좁고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호현[狐峴]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곳에 나무가 많고 후미진 곳이어서 여우가 많이 출현하였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소사 지역의 옛사람 중에서 여우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고, 현재의 도로가 형성되기 전 이곳의 산세와 지형으로 보아 여우 출몰 가능성이 많다. 부천시사에서는 여우고개에서의 여우의 어원은 엿으로 발음되고, 엿은 얕다는 의미의 얕과 같아 엿이 여오가 되고 이것이 여우가 된 것으로 여우가 자주 출몰하는 고개가 아니라 야트막한 고개라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렇듯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여우고개는 부천과 시흥, 서울을 잇는 중요 도로라 할 수 있다.
10.3Km 2024-12-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보성사는 1910년 말 창신사와 보성학원 소속 보성사 인쇄소를 합병하여 만든 천도교 계통의 인쇄소이다. 3.1운동 동시 2만 장의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보성사 사장이었던 이종일은 공장 감독 김홍규, 총무 장효근 등과 함께 1919년 2월 27일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자신의 집으로 운반한 뒤, 다음날 전국 각지에 배포함으로써 독립운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보성사는 30평 2층 기와 벽돌집으로 전동 보성학교 구내에 있었으며, 보성사의 소유주이기도 했던 천도교 교주 의암 손병희의 특명으로 육당 최남선이 초안을 집필하고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넘겨받아 사장 이종일, 공장 감독 김흥규, 총무 장효근이 1919년 2월 27일 밤에 3만 5천 매를 인쇄하였다. 일본 측의 형사에게 발각되는 위기도 있었으나 족보책이라고 위장하여 위기를 넘겼다. 3월 1일에는 윤익선과 이종린, 이종일, 김홍규 등이 지하신문인 조선 독립신문 1만 부를 계속 발행하였다. 일경은 보성사를 즉각 폐쇄하였으며, 1919년 6월 28일 밤에는 불을 질러 태워버린 이후 터만 남아 오늘에 전한다. 보성사는 현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 있으며, 기념비와 동상은 조계사 후문 맞은편 근린공원에 있다.
10.3Km 2025-08-20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관훈동 30-1에 위치한 민씨 가옥은 조선 말기의 정치인이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민영휘 일가가 거주한 곳이다. 민영휘는 일제강점기 판서, 한일은행 은행장 등을 역임한 관료로 막대한 부를 누렸으며 1895년 안국동으로부터 교동으로 이주하면서 관훈동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일가를 거주하게 했다. 1936년 기준으로 총 6동의 목조와즙과 2층 양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1976년 가옥 중 일부가 멸실되고 안채 일부와 문간채 등 목조와즙 2동만 남아있다.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민영휘와 그 본처 대방마마 평산신씨와 입양한 장남 민형식 등은 경운동에, 첩인 해주마마 안유풍과 그 아들 민대식은 관훈동에 살았으며 그 자식들까지 경운동과 관훈동 일대에 한데 모여 살았다. 관훈동 30번지는 1970년대까지 민영휘의 자손들이 소유하고 있었다가 경매와 매매를 거친 끝에 1986년 경인미술관이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 경인미술관 소유 당시인 1995~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로 안채 일부와 문간채가 이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