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Km 2024-06-03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1길 12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 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이 집은 후손들이 여러 차례 고쳐 지은 집으로 현존 가옥은 1917년 건축한 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대문 등이 남아있다. 대문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이다. 사랑채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으로 앞뒤로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다듬돌 바른 층 쌓기의 두벌대 기단위에 덤병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굴도리, 장혀를 보아지와 함께 결합하였다. 평면은 좌로부터 한칸의 방 3개와 한칸의 대청을 1단 높혀 누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여섯칸, 측면 한칸에 전후좌우에 마루가 있는 팔작 기와집이다. 내부가구는 고주 위에 대량을 걸치고 판대공을 놓았다. 창호는 전체가 양쪽으로 열어지는 문이며, 방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넉살창이 있다. 숭정기원후오갑정사윤이월초구일(崇禎紀元後五甲丁巳閏二月初九日)이라는 상량문에 글씨가 쓰여 있는데 이것으로 건립연대가 1917년임을 알수 있다.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종후, 인후 형제의 부조묘이다. 이 사당은 정면 세칸 측면 한칸으로 앞에만 마루가 있으며 맞배지붕이다. 외별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 주초석을 놓고 현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첨자형의 포로 결합하였고, 초익공 위에는 용두를 빼내고 장혀와 굴도리를 얹었다. 내부가구는 대량위에 동자주를 얹고 종보를 걸친 뒤 그 위에 다시 판대공을 놓았으며, 겹처마에 조잡한 모조 단청을 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안채보다 빠른 시기로 추측된다. 내부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거주하시는 분의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하며 문화재 무료 오픈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내부 촬영은 더더욱 금기이다.
13.6Km 2025-07-23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1533~1592)과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 고인후 및 금산전투에서 같이 순절한 유팽로, 안영을 배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광주와 전남 지역 서원과 사우 중에서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령(1868년, 고종 5) 때 훼철되지 않은 곳이다. 호남 지역 유학자들이 고경명 등을 기리기 위하여 지금 자리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1603년(선조 34) 박지효 등을 중심으로 한 유학자와 고경명의 후손들이 사액을 청하여 조정에서 포충(褒忠)이란 이름을 받았다. 이후 수차례 중수가 되었다. 포충사는 신사우 구역과 구사우 구역로 나누어진다. 신사우 구역에는 사당인 포충사와 내삼문인 성인문이 있으며, 내삼문 앞에는 유물전시관인 정기관과 외삼문인 충효문이 있다. 구사우 구역은 신사우 구역의 서쪽에 있으며, 사당과 동재, 서재 및 내삼문, 외삼문이 있고,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다.
13.7Km 2025-07-30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충무길 36
장성공원은 전라남도 장성군에 위치한 자연 친화적인 공원으로, 면적이 넓고 다양한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산책로, 운동시설, 그리고 다양한 자연 경관을 제공하며, 특히 가을철 단풍 명소로 유명하다. 공원은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사랑받는 장소로,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13.7Km 2025-07-31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충무길 36
3.1독립운동이 한창 전국으로 확산되어 가던 1919년 3월 17일 송주일, 조병렬 등이 주도하여 소룡리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고, 3월 21일에도 교사 정선유와 학생 100여명과 주민들이 독립만세 시위를 하였다. 3.1운동열사장성기념사업회가 장성출신 3.1운동열사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1972년 9월 30일 이 비를 세웠다.
13.7Km 2025-07-04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죽향문화로 35
예로부터 담양은 기후와 토질이 대나무가 자라기에 알맞아 마을이 있으면 대나무가 있고 대나무가 있는 곳엔 마을이 있는 대나무의 주산지로서 특히, 죽세공예가 발달하여 대나무고을(竹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통적 죽제 민예품의 명산지인 담양에 죽제품을 보존, 전시, 시연, 판매, 체험 등 종합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죽세문화의 전통 계승과 공예 진흥을 위해 한국대나무박물관을 건립하였다. 1981년 담양읍 담주리에 개관하여 운영해오다 지난 1998년 현재의 위치에 확장 이전하여 2003년에 한국대나무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지난 35년간 수집하여온 죽제품의 전시뿐만 아니라 전국대나무공예대전 입상작품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외국 제품 및 2015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 전시품과 참여국의 기증품이 전시되어 있다. 대나무 박물관 야외로 나오면 대숲 산책길과 대나무공예체험관, 유리온실도 같이 둘러볼 수 있다.
13.7Km 2025-03-19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죽향문화로 35
비영리 문화 예술 기관으로 담양 지역의 문화 사업과 사회 교육 사업 및 향토 문화 연구는 물론 각종 행사 등을 시행하고 있다. 지역의 고유 문화의 계발, 연구, 조사 및 지역 문화 행사의 개최, 활발한 국내·외 교류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문화 생활의 질을 높이고,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을 보급하며, 지역 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주요 활동으로는 담양 선인들의 문학과 학문, 의병정신 등 인문정신의 전통 계승을 위한 현장활동, 담양의 지역민뿐만 아니라 관광객까지 대상을 확대한 문화체험, 담양의 상징인 대나무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13.7Km 2025-08-05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길 66
고씨삼강문은 조선시대 고경명과 고경명의 동생인 고경형,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와 고인후, 딸인 영광유생 노상룡의 부인, 고경명의 조카 고거후의 부인인 광산정씨, 고경명의 손자 고부금 총 7명의 충, 효, 열을 기리는 정려문이다. 정려문은 효자, 효부, 열녀, 충신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나 문을 말한다. 현존 건물은 1844년에 세운 것으로 사방에 홍살문을 설치하여 내부를 차단하고 앞 뒤 이열로 정려현판을 걸었다. 정면 네칸, 측면 한칸의 맞배지붕으로 지붕은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처리했다. 건물 밖에는 담장을 돌리고 외삼문을 세웠으며 삼강문 옆에는 고씨문중의 제각인 추원각이 있다. 장흥고씨 삼강문은 충렬공 고경명의 태생지인 압촌동 마을입구에 있다. 정석7간 측면 1간의 골기와 8작지붕으로서 임진왜란 후 왜병이 철수한 선조28년(1595)에 고경명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선조가 명하여 세웠다. 충렬공 제봉 고경명(1533~1592) 선생은 압촌동에서 태어나 여러 관직을 거쳐 1591년 동래부사를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에서 왜병과 싸우다 두 아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13.7Km 2025-03-27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양과동정은 향약의 시행처로 사용되었으며, 간원대라고도 불린다. 간원대는 양과동 출신들이 간원으로 많이 진출하였는데, 그들이 임금에게 올릴 상소를 이곳에서 논의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구조는 정명 3칸, 측면 2칸이고,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정자의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것이다. 정자의 내부에 「양과동적입의서」, 「양과동정향약서」 등 향약과 관련된 글들이 걸려있다.
13.7Km 2024-12-24
전라남도 장성군 삼월길 18
우시장국밥집과 더불어 장성의 국밥집 투 톱으로 불리는 국밥 맛집이다. 주차 공간은 넉넉하지만, 많은 손님이 방문하는 만큼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없을 때도 많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모듬국밥으로 머릿고기, 내장, 순대, 선지가 들어가 있다. 새끼보국밥, 머리국밥, 내장국밥, 순대국밥, 선지국밥, 콩나물국밥 등 국밥이 종류별로 있어, 입맛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매장 내부는 홀과 룸 둘 다 갖추고 있다. 고기, 선지 등 국밥에 들어가는 내용물이 푸짐해서, 한 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어,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 장성댐, 황룡강생태공원 등이 주변에 있어 연계 관광하기 수월하다.
13.7Km 2025-01-17
전라남도 장성군 삼월길 5
황룡시장은 원래 현재의 황룡면사무소의 부근의 월산동에 있었으나 1962년경에 구장터가 좁아지면서 현재의 황룡면 월평리 151-1번지와 장성읍 영천리 삼월동 1371번지 일대로 옮겼다. 1950년대 중반 당시 장성읍장이던 변진갑이 황룡장을 없애고 현재의 장성읍 사무소 건너편에 장을 개설하였으나, 장성읍장은 6개월 만에 폐쇄되었다. 당시의 황룡강 변영회장이던 고윤경이 논 60평을 기증하면서 황룡장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장성읍 영천리 삼월동 1371번지에 있던 우시장이 부지가 좁아 1980년에 황룡면 월평리 151-6번지로 옮겼다. 황룡장은 장옥이 낡아 매년 몇 동씩 보수해 오다가 2001년 29동을 개량해 목조건물로 일괄개축하면서 그 면모가 일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