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정시영 고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화성 정시영 고택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화성 정시영 고택

8.4Km    2024-10-24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오얏리길 44-12

나즈막한 동산이 둘러있는 명당 터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큰집이다. 솟을대문에 적힌 기록에는 "고종 24년(1887)에 문을 세웠다"고 적혀 있으나, 안채와 사랑채는 이 문보다 약 50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문은 정면으로 내지않고 북쪽측면으로 내어 언뜻보면 집이 커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50칸이 넘는 큰 규모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이며, 마당의 왼쪽으로 길게 줄행랑채가 뻗어있고 오른쪽으로 사랑채가 자리한다. 사랑채 맞은편의 마당끝에는 안채로 통하는 중대문이 있다. 중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ㄷ자형의 안채는 앞이 개방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안방·찻방(과방)이 있고, 오른쪽에 부엌·건넌방·마루를 배치하였다. 특이한 것은 사랑채의 안사랑방 뒤에 있는 골방이 뒷마루를 통하여 은밀하게 안채의 대청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대부 집에서 통상 쓰는 수법이다. 길다란 행랑채는 안채와 사랑채의 앞을 가로막아 안마당과 사랑마당을 형성하고 있다. 대문채는 여기에 연결이 되어 있다. 안사람들의 아늑한 생활공간이었던 뒷뜰은 우물과 장독대를 두어 안살림의 옥외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주위에 심은 감나무와 소나무는 뒷산으로 이어져 자연에 파묻힌 아름다운 공간구성을 만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평면형태가 [月]자형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형적인 양반가옥의 모습을 보이는 주택이다. (출처: 국가유산청 공식 홈페이지)

화성 정수영 고택

화성 정수영 고택

8.4Km    2024-10-30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오얏리길 56

정수영 고택은 1800년대 말에 지은 초가집이다. ㄱ자 형태의 안채와 ㅡ자형의 사랑채와 행랑채가 모여 경기도의 전형적인 ㅁ자형의 평면구조를 보인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으로, 대문의 왼쪽에 사랑채, 오른쪽에는 행랑채가 자리 잡고 있다. 대청 뒷벽의 왼쪽에는 뒤창을 내고, 오른쪽에는 벽장을 만들어서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보통 사당을 따로 두지 않는 민가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전체적으로 간결한 구성이지만 중간 규모의 농사를 짓는 살림집에서 필요한 공간이 짜임새 있게 갖추어져 있다.

남양성모성지

남양성모성지

8.5Km    2024-05-24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남양 성모 순례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많은 순교자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무명 순교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기록이 전해지는 남양의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사람뿐이다. 남양 순교지는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가꾸어져 오던 남양 순교지는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화성시에서 화성 8경 중의 하나로 지정하여 홍보하고 있을 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 품 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 순교지로서의 남양 조선조 때 남양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곳이다. 남양부사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이반행정에 관한 권한 외에도 민사소송과 형사범을 다루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양은 물론 그 인근에서 붙잡은 천주교인들을 도호부사가 있던 남양으로 끌어다가 처형했다. 그리고 남양은 지리적으로도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한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 기록에 나타난 순교자들 - 김 필립보(1818~1868) 충청도 내포사람으로 조모의 가르침에 따라 입교하려 했으나, 부친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은 후 후일 반대하던 부친과 함께 교리를 배워 영세했다. 전교도 열심히 했고 사제의 공소 방문 때는 사제의 성무를 도왔으며 교우들이 바른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병인년 대박해 때 피신하여 살다가 1868년 남양 감영 포졸에게 아내 박 마리아와 함께 붙잡혀 남양으로 끌려왔다. 이 부부는 온갖 형벌에도 배교치 않았으며 한달 동안의 옥고 끝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박 마리아(1818~1868) 순교자 김 필립보의 아내로 1868년 남편과 같이 남양 감영 포졸에게 잡혀서 남편과 함께 남양으로 끌려와 한달 동안의 옥고와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고 남편 김필립보와 같이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정 필립보(?~1867) 경기도 용인의 것옥골에서 살았는데, 1866년 11월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붙잡혀 가옥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 해 1867년 1월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 김홍서 토마(1830~1868) 수원 갈매리 사람으로 1868년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아내와 함께 감옥에 끌려왔다. 아내는 배교하여 풀려났으나, 김홍서 토마는 끝내 배교치 않고 김 필립보 부부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배교한 아내는 김홍서 토마가 순교하자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렀다. 순교자 김홍서의 나이는 38세였다.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

8.5Km    2024-05-30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신빈 김씨(1406~1464)는 세종의 후궁이며, 본관은 청풍이다. 본래 내자시(왕실에 필요한 각종 물자의 공급을 담당한 곳) 여종이었으나, 세종이 즉위하던 해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이 되어 중궁전으로 보내졌다. 1435년 후궁으로 계양군 등 5 왕자를 낳았으며, 5번째 아들 영해군을 낳은 뒤 소의, 1439년 귀인에 올랐다.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다. 세종이 죽자 신빈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단종이 다시 환속하도록 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았다. 신빈김씨는 6남 2녀를 낳았으니 계양군 이증, 의창군 이강, 밀성군 이침, 익현군 이관, 영해군 이당, 담양군 이거이며, 딸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떴다. 신빈김씨 묘는 봉분 주변으로 곡장이 둘러져 있으며, 봉분 앞에 석상과 향로석, 장명등이 놓여 있고 그 좌우로 문인석 한쌍이 건립되어 있다. 이 중 복두공복 형태의 문인석만 15세기의 작품이다. 묘 동쪽에는 비각이 있으며 이곳에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1465년에 건립한 신빈김씨 신도비는 하엽수방부(연잎 형태의 비석 머리와 네모난 비석 받침) 형태이며, 김수온이 글을 짓고, 안혜가 글씨와 전서를 썼다. 전서로 ‘신빈김씨묘비’라고 새겨져 있어서 신도비임을 알 수 있다. 세종의 많은 후궁들 중 후손이 가장 번창하였고, 인품이 온화한 덕분에 화성시에 조성된 신빈김씨의 묘역을 능이나 원에 못지않게 깔끔하게 단장되어 관리하고 있다.

두오즈

두오즈

8.5Km    2024-02-29

경기도 화성시 한천1길 32-7

두오즈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에서 한식당과 카페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를 지나면 카페와는 전혀 다른 토속적인 외관과 분위기를 갖춘 식당이 나온다. 식당만 하던 곳이었는데 최근에 리모델링을 하면서 카페를 새로 오픈했다. 마당에 작은 연못도 있고, 시원한 분수도 있다. 정원이 잘 꾸며져 있어 정원을 즐기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외관만큼이나 자랑하는 것이 음식들이다. 손맛이 느껴지는 밑반찬들을 곁들어 고기를 구워 먹거나 찌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8.6Km    2024-08-28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1919년의 3·1 운동은 개신교가 한국민족주의 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개신교는 천도교-불교와 함께 3·1 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독립만세시위 중 상당 부분이 개신교신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그만큼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한 피해도 많았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경기도 화성시의 제암리교회이다. 일본 경찰은 1919년 4월 15일 오후 제암리교회에 신자들을 모이게 한 후 문을 폐쇄하고 교회에 불을 지르면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이 때문에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4월 5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제암리교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었다. 1905년 8월 제암리 이장이었던 안종후의 주도로 설립된 제암리교회는 동족부락이라는 특성 때문에 유난히 강한 단결력을 지녔는데 3·1 운동 때도 이 같은 성격은 그대로 나타났다. 일본 경찰은 이어 제암리의 가옥 30여 채를 불태우고 5백 m 떨어져 있는 고주리에서 천도교 신자 6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워버렸다. 이 같은 만행으로 이날 제암리일대에서는 사람과 가옥, 가축, 의류, 곡식 등이 타는 냄새와 연기가 10여㎞ 밖까지 퍼져 나갔다고 전한다.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이 일어난 후 신자나 일반인들은 일본의 감시 때문에 사건 현장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사건을 전해 들은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며칠 후 불탄 교회에서 희생자들의 유골을 수습하여 인근 공동묘지입구에 묻을 때까지 방치됐다. 제암리교회는 1919년 7월 자리를 옮겨 다시 건립됐고, 1938년 현재의 위치에 기와집 예배당이 만들어졌지만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은 광복 후까지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 사건 현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된 [3·1 운동 순국기념탑]이 세워졌고, 1970년 9월에는 일본의 기독교인과 사회단체들이 속죄의 뜻을 담아 보내온 1천만 엔의 성금으로 새 교회와 유족회관이 건립됐다. 또 1982년 9월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유해 발굴작업이 실시돼 교회 옆에 마련된 묘소에 안장됐으며, 다음해 7월 기념관과 새 기념탑이 세워졌다.

제암종가집가든

제암종가집가든

8.6Km    2023-07-20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고주로 9
031-354-5020

제암종가집은 20년째 이어가고 있는 정통 갈비 전문점이다. 종가집만의 비법으로 갈비양념과 수제 냉면을 만들고, 매년 농산물을 직접 경작하고 손질하여 신선한 식사를 만들어 제공한다. 양념갈비는 육질이 신선하고 부드러우며, 육즙 또한 풍부하여 수제 양념과 잘 어우러져 감칠맛이 난다. 갈비탕은 진한 한우사골국물에 큼직한 뼈대가 두 개 들어가 있으며, 뼈와 고기가 쉽게 분리되는 만큼 고기를 푹 삶았기 때문에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8.6Km    2024-08-27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1,306㎡ (395평) 규모의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은 제암리 학살사건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주요인사 명단을 입수한 일본 헌병 30여명이 4월15일 오후 2시경 제암교회에 주민들을 모이게 한 뒤 모든 문을 폐쇄하여 감금시키고 교회에 불을 지른 후, 교회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23명을 학살하고 30여채의 가옥을 불태워버린 사건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은 지 63년이 지나서야 마을에서 4km 떨어진 도이리 공동묘지에 평토장으로 안장되었던 유해를 발굴하여 제암교회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유택을 마련하였으며 후세에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전시관, 교육관 조형물 등을 설치하여 나라 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상실에서는 제암리 사건 및 배경, 화성독립운동에 대한 동영상을 상영하고, 제1전시실에서는 1919년 화성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의 배경과 전개과정 그리고 4월15일 일본군에 의한 제암리 학살, 유가족들의 증언, 그 후의 기록들을 사진패널과 유물, 인터뷰 영상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실은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개관 20주년을 맞아하여 제암리 학살사건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유족과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암리 이야기가 1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자료와 영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기념관에서는 사전예약을 하면 전문적 해설 소양을 갖춘 해설사가 제암·고주리학살 사건과 화성독립운동에 대한 해설을 제공한다.

또나따목장

또나따목장

8.6Km    2023-03-16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마도로 223-19

※ 목장 내부사정으로 체험 일시중단

또나따 목장은 최첨단 착유시스템인 로봇착유기를 국내최초로 도입하였으며, 착유과정을 자동화함으로써 위생적인 우유를 생산하고있다. 젖소들이 원할때마다 스스로 착유할 수 있기 때문에, 착유로 인해 겪는 심한 스트레스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이밖에도 젖소의 행동습관을 파악하여 여러가지 스트레스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적은 젖소로부터 건강한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또나따목장의 최첨단 로봇착유시스템을 이용하여 밤12시부터 새벽4시까지 착유한 우유는 일반 우유보다 수면유도 성분이 3~4배 가량 많이 함유된 우유이며, 물량이 제한되어 있는 우유이다. 또한 직접 가공한 우유로 만들 예정인 시유요구르트와 스트링치즈는 또나따목장의 새로운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마도농산물재래시장

마도농산물재래시장

8.6Km    2023-11-14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화성로790번길 14

송산 마도 IC 인근 313번 국도변에 위치해있는 시장으로 화성시가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 판로를 위해 조성했다. 제부도, 대부도, 궁평항, 탄도항과 인접해 있어 관광객들의 접근성도 좋다. 김장철이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장 보러 오는 수요가 많다. 재래시장이지만 시설 정비와 함께 넓은 주차장을 확보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