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단[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향단[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향단[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향단[한국관광 품질인증/Korea Quality]

0m    46085     2019-06-11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21-83
010-6689-3575

경주시 양동마을에 자리한 향단은 보물 제412호로 지정된 대표적인 명품 고택이다. 잘 지은 한옥 자체로도 멋스럽지만,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해 지은 곳이라는 사연이 이곳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높은 언덕에서 있어 햇볕을 가장 먼저 맞이하며, 오랜 세월 동안 고택의 깊은 멋을 지켜가고 있는 향단을 소개한다. 양동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한옥 마을이다. 경주 손씨(慶州孫氏)와 여강 이씨(驪江李氏)종가가 한마을에 살며 옛 정취와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마을에는 조선 사대부의 품격을 갖춘 한옥과 소박한 서민 생활이 엿보이는 초가가 어우러져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집이 바로 향단이다. 물봉동산 산마루에 기대어 선 향단의 풍채가 멀리서도 눈에 띈다.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격이다. 1540년 중종(재위 1506∼1544)이 충신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의 노모를 위해 지어줬다는 이 집은 당시에는 99칸에 달했단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56칸만 남아있지만 명가의 위엄은 그대로다.
향단은 자연과 사람이 집과 잘 어우러지도록 지은 집이다. 집 안 곳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빼어나지만, 산세와 어우러진 독특한 가옥 구조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해 집을 지었기에 건물의 높낮이가 제각각이다. 행랑채 대문간만 하더라도 경사면에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쌓고 그 위에 대문이 나 있다. 특이하게도 전면에 대문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없고 대문 옆에 붙어 있는 협문으로 돌아들어 가야 하며, 행랑채 뒤에 있는 사랑채로 가려면 계단을 통해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가야 하는 등 독특한 방식의 동선이 이어진다. 부엌과 안채, 건넌방 등도 저마다 다른 높낮이를 이용해 외부로의 노출을 막았다. 그 덕에 채광이나 전망 등 높은 위치의 이점은 살리면서 아늑한 분위기까지 만들어냈다. 특히, 노모가 지냈던 안채는 특별히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하다. 집 안 어디에서나 안채와 잘 통할 수 있도록 안채를 한가운데에 두어 언제든 노모를 돌볼 수 있게 했고, 안방의 문을 활짝 열면 남쪽으로 시원한 대청이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이외에도 향단에는 특이한 구조가 많지만, 모두 자연과 사람에게 맞추어 지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옛사람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한옥에서 생활해 보는 것 자체로도 좋지만, 향단에서 마련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한지에 목판을 찍어 편지를 쓰는 '목판 체험'이나,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배우는 '예절 교육', 향단의 상징인 연꽃으로 차를 우려내는 '다도 체험', 계절에 맞는 천연 재료로 가방이나 옷 등을 염색하는 '천연 염색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숙박을 예약할 때 함께 예약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안채 4곳과 부속채 3곳, 행랑채 2곳을 숙박으로 넉넉하게 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방문객이 차기 때문에 서둘러 예약하는 것이 좋다.

경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52m    97190     2019-06-24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93

양동 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전통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 최대 규모의 마을로,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에 의해 형성되었다. 국보, 보물, 민속자료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는데, 마을의 규모 및 보존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 묻지 않은 향토성 등 볼거리가 많아 1993년 영국의 찰스황태자도 이곳을 방문한 바 있다.양동마을의 자연환경을 살펴보면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 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골짜기와 능선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포함하여 500여년의 전통의 향기를 품은 총 160여호의 고가옥과 초가집들이 우거진 숲과 함께 펼쳐져 있다. 또한 옛 명문대가의 영광스러운 자취와 선조들의 삶이 배어있는 200년 이상된 고가 54호가 보존되어 있어 조선 중기 이후의 다양하고 특색있는 우리나라 전통가옥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전에 마을의 배치와 답사 코스를 파악하고 문화재의 소재를 확인한 후 답사하는 것이 좋다. 단, 마을을 둘러볼 때는 집안에 살고 있는 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2010년 7월 31일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두 마을의 등재로 한국의 세계유산은 석굴암ㆍ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 창덕궁, 수원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 그리고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 조선왕릉(2009)에 이어 통산 10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 양동마을의 문화재

1) 국보 1점 - 통감속편 (通鑑續編, 283호)
2) 보물 4점 - 무첨당 (無添當, 411호), 향단(香壇, 412호), 관가정 (觀稼亭, 442호), 손소영정(孫昭影幀, 1216호)
3) 중요민속자료 12점 - 서백당 (書百當, 23호), 낙선당 (樂善當, 73호),사호당 (沙湖當, 74호), 상춘헌 (賞春軒, 75호),근암고택 (謹庵古宅, 76호), 두곡고택 (杜谷古宅, 77호),수졸당 (守拙當, 78호), 이향정 (二香亭, 79호), 수운정 (水雲亭, 80호), 심수정 (心水亭, 81호),안락정 (安樂亭, 82호), 강학당 (講學堂, 83호)
4)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7점
* 유형문화재 - 적개공신논상록권 (敵愾功臣論賞錄券, 13호)손소선생분재기 (孫昭先生分財記, 14호)
* 기념물 - 양동의 향나무 (8호)
* 민속자료 - 대성헌 (對聖軒, 34호)
* 문화재자료 - 손종로정충비각 (孫宗老旌忠碑閣, 261호)
* 향토문화재 - 경산서당 (景山書堂), 두곡영당 (杜谷影堂)

버스로 떠나는 제2의 수학여행 양동마을 코스

버스로 떠나는 제2의 수학여행 양동마을 코스

152m    4223     2016-09-27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신라박물관인 경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도 52개나 된다. 그렇다보니 경주 관광지도에 표시된 관광지들을 다 돌아봐야 한다는 일념이 ‘불끈불끈’ 솟는 것은 당연지사. 이럴 땐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을 떠올리며 시티투어 버스를 타자. 그때의 추억과 함께 경주의 찬란한 유산들이 새록새록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자취를 찾아서

회재 이언적 선생의 자취를 찾아서

176m    3076     2016-09-27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옛 정취가 남아 있는 양동마을 고샅길을 따라 고즈넉한 산책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는 옥산서원과 독락당까지 둘러보면 문화유산답사 코스로 더할 나위 없다.

경주문화원 안강교육장

경주문화원 안강교육장

2.4 Km    17463     2018-10-26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안강중앙로 249

경주문화원 안강교육장은 2009년 8월 개관하여 열린 문화공간으로서 다양한 문화행사와 취미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달전리 주상절리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달전리 주상절리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5.0 Km    0     2019-08-09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달전리

달전리 주상절리는 포항시 남구 연일읍 달전리에 위치하며, 높이 약 20m, 길이 약 100m의 큰 규모를 가진다. 이곳에 분포하는 현무암은 과거 포스코 및 국가산업단지 부지를 매립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주상절리가 발견된 이후 2000년 4월 28일 지질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 41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주상절리는 주로 현무암과 같은 화산암에서 형성되는 육각기둥 모양의 돌기둥을 의미한다. 달전리 주상절리는 지질명소로 많이 알려져 있는 제주도 중문 주상절리나 광주의 무등산 주상절리처럼 위로 솟은 주상절리이다. 뚜렷한 육각기둥이 잘 발달한 이곳에서는 용암이 식어 주상절리가 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달전리 주상절리의 현무암은 한반도와 붙어있던 일본이 잡아당기는 힘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동해가 형성되었을 때 만들어졌다. 잡아당기는 힘은 이 곳 달전리에도 영향을 주어 땅이 벌어지게 되었고, 벌어진 틈을 따라 땅 속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솟아오르면서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달전리 주상절리는 주상절리 그 자체뿐만 아니라 동해열림의 환경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

경주 양동 무첨당

237m    18994     2018-10-04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32-19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1491∼1553)선생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건물 내부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이다. 대청은 앞면 기둥 사이를 개방하고 누마루에서도 대청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며, 뒤쪽과 옆면은 벽을 쳐서 문짝을 달았다. 평면은ㄱ자형을 띠고 있고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배치하고 있다. 이 건물의 기능은 상류주택에 속해있는 사랑채의 연장 건물로 손님접대, 쉼터,책읽기를 즐기는 따위의 여러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별당건축의 기능에 충실하게 지은 건축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경산서원

384m    2342     2019-04-04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55

1838년(헌종 4) 낙산에 창건하고, 1857년(철종 8) 구경리에 이건하였다가, 1870년(고종 7)에 훼철되었다. 1918년 안계리에 중건 · 복향하였다가 댐 건설로 197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매년 4원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양동 서백당

442m    20237     2019-06-03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75-6

이 가옥은 경주 손씨 대종가인 양민공 손소(1433∼1484)가 건립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1463~1529)과, 그의 외손이며 동방십팔현으로 문묘에 배향된 이언적(1491~1553)이 태어난 곳이라 한다. 일자형의 대문채는 안에 ㄱ자형의 안채가 있고, 사랑 후원 뒤쪽 높은 곳에는 신문과 사당이 배치되었다. 종가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실이며,사랑대청에서 바라보이는 후원의 경치 또한 가경이다. 이 집의 당호는 송청 또는 서백당이라 하며, 과거에는 이 가실(家屋)의 주위에 외거하인(外居下人)들이 거처하던 가랍집이 있었다 한다. 정원에는 그 당시에 심은 향나무가 있어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 연혁(유래)

이 가옥은 월성 손씨 종택으로 양민공 손소가 지은 것이다. 그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1463∼1529)과 그의 외손이자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사람인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곳이다. 서백당 혹은 송첨이라고도 불리운다.'ㅡ'자형의 대문채 안에 'ㅁ'자형의 안채가 있는데 대청 6칸, 안방 3칸, 부엌 2칸이다. 아래채의 중심칸이 안대문이고 그 왼쪽은 2칸마루 고방이며, 오른쪽은 큰사랑방과 사랑대청이다. 높은 돌기단 위에 있는 사랑대청은 마루 둘레에 난간을 돌린 누마루이다. 사랑대청 옆 정원쪽으로 짤막한 상징적 담장이 있으며, 정원 위쪽에는 사당이 있다. 조선 초기 양반집의 일반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종가(宗家)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춘 큰 가옥이며, 사랑 마당에 있는 향나무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강서원

3.5 Km    16075     2019-04-04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유금강정길 40-25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손중돈(孫仲暾)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훼철 직후인 1870년에 설단(設壇)하여 단향(壇享)으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1925년에 활원재(活源齋), 1960년에 묘우(廟宇) · 강당 등을 복원하였다. 1980년에 경상북도에서 수복(修復)하였다. 1986년에 동재 · 서재 · 신도비각을, 1999년에 탁청루를 복원하였다. 매년 2월 하정(下丁 : 세번째 丁日)과 9월 하정에 향사를 지낸다.

구강서원

4.1 Km    2075     2019-04-04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구강길 68-6

구강서원은 원래 고려 공민왕 때 이제현의 영당(影堂)으로 세운 것을, 1686년(숙종 12)에 서원으로 다시 세웠다. 하지만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고, 1904년 지방 유림이 복원하였다. 매년 2월 하정(下丁)과 8월 하정에 향사를 지낸다.

경주 흥덕왕릉

4.5 Km    18204     2019-04-04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길 190-30

신라 역대 왕릉 중에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진 대표적 왕릉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왕비와 합장한 것으로 되어 있어, 봉분(封墳)의 규모가 비교적 크다. 봉분 밑에는 판석(板石)을 세워 둘레돌[護石]을 삼고, 판석과 판석 사이에 탱주(伸)를 세워 판석을 고정하였으며, 위에 갑석(甲石)을 얹었고 탱석에 각각 방향을 따라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였다. 둘레돌의 주변에 방사형으로 박석을 깔고, 그 주위에 난간을 돌렸다. 난간 기둥에는 상·하 2개의 둥근 구멍을 뚫어 관석(貫石)을 끼우게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다. 봉분 4귀퉁이에는 각각 돌사자 1구씩을 배치하였고, 그 전방의 좌우에는 문인석(文人石)과 무인석(武人石) 각 1쌍이 배치되었다. 또, 능 전방의 왼쪽에는 능비를 세웠던 귀부(龜趺)가 있으나 손상되었고, 비신(碑身)과 이수(首)는 망실되었다. 이 표식물(表飾物)의 양식을 보면 봉분 밑의 둘레돌이나 십이지신상의 조각은 원성왕릉의 형식을 따랐고, 돌사자의 배치는 성덕왕릉의 형식을 취하였으며, 문인석 ·무인석의 배치는 성덕왕릉 또는 원성왕릉의 형식과 같다. 흥덕왕은 임금이 된 첫해에 왕비인 장화부인(章和夫人)이 죽었는데, 11년 동안 죽은 장화부인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왕이 장화부인의 무덤에 합장하기를 유언하여 흥덕왕릉에 합장하였다고 하며, 능의 주변에서 ‘興德’이라 새겨진 비석의 파편이 발견되었다.

* 면적 6만 5460㎡, 지름 20.8m, 높이 6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