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정사(남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귀정사(남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귀정사(남원)

귀정사(남원)

0m    20089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2길 246

귀정사는 남원시 천황산에 있는 사찰로 백제 무령왕 15년(515) 현호국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만행사라고 하였는데, 훗날 어느 왕이 이곳에 들렀다가 궁에 돌아가는 것도 잊은 채 3일을 보낸 뒤에야 돌아갔다고 해서 절 이름을 귀정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옛 귀정사에는 법당, 정루, 만월당, 승당, 연화당, 삼광전, 문수전, 명월당, 시왕전, 향로전, 영당의 전각이 있었으며, 부속 암자로는 남암, 상암, 대은암, 낙은암 등이 있었다. 2006년부터는 새로운 대승불교운동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의 터전이 되면서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보광전 개축, 만행당, 관음전, 산신각, 종각 등을 새로 건립하였고, 인드라망 수련원, 만행산 귀농학교, 숲살림원,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 등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귀정사는 체험형과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임실 대말방죽 숲(가시연꽃 자생지)

임실 대말방죽 숲(가시연꽃 자생지)

10.0 Km    19271     2024-01-19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 대정리

대말방죽 숲(대정저수지)은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는 곳이다.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희귀식물로 지정된 가시연꽃이 자생하고 있다. 가시연꽃은 세계적으로 1속 1종 밖에 없는 한해살이 물풀로 연꽃의 잎은 뿌리 줄기에서 나와 물 위에 뜨고 잎의 앞면은 주름지고 가시가 있으며 뒷면은 흑자색, 꽃은 자줏빛으로 주로 10월에 피는데, 연잎과 꽃받침에도 가시가 돋아나 흡사 선인장에 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대말방죽 숲은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는 국도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에는 아름드리 노송과 왕버드나무가 긴 세월 자리 잡고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영천서원

10.0 Km    1547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3길 33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이다. 1619년(광해군 1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기묘사화 때 희생된 안처순을 중심으로 정환, 정황, 이대병 등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1686년(숙종 12)에 임금이 친필로 [영천(寧川)]이라는 현판을 하사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이곳은 남원부 48방 중의 하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서원은 48방 내의 30여 서원 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권위가 높아 우수한 학자들이 멀리에서 몰려왔다고 한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광복 후에 후손들이 복원한 것이다.

남평문씨열녀비

10.2 Km    1542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남평문씨열녀비는 산서면 소재지에서 임실 성수면으로 가는 도로의 하오마을 입구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정려각 안에는 ‘열녀학생권희언처남평문씨지려’라고 새긴 비석과 남쪽 벽면에는 문 씨 정문기가 걸려 있다. 이 정문기의 내용에 의하면 남평 문 씨는 시집온 지 3일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다가 양자를 두었으나 양자마저 병으로 죽게 되자 그도 3년 만에 죽었다. 그는 유언에서 내가 죽게 되면 내 남편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라고 하여 그 후손들이 문 씨의 유언에 따라 남편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고 이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정려각은 높이가 70cm 정도 되는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지붕으로 되어 있다.

신기마을

신기마을

10.2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운봉신기길 103

신기마을은 선조 28년(1595) 임진왜란 후 인동 장씨 장덕복이 이곳에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되었다. 전란에 고통을 받다가 지리산의 기운이 이어지는 명당자리로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이란 뜻으로 ‘새터(신기,新基)’라 하였다. 신기마을은 지형학적으로 와우형, 즉 소가 누워 있는 평화로운 정경이라고 한다. 초봉에는 운봉의 갑부 박희옥이 만든 별장이 있었다. 이곳에서 많은 명창 소리꾼들을 불러 판소리를 감상하고, 또 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판소리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효자임옥산정려각

10.3 Km    1542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이 효자각은 소재지에서 임실 성수면 방면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도로변에 있는 것으로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으로 된 맞배지붕이다. 현재 효자각의 안에는 "효자주부임옥산지려”라는 명문이 음각된 비석과 중수와 관련된 5개의 현판이 벽면에 걸려 있다. 그리고 이 효자각의 서쪽에는 1990년에 세운 임산옥산정려라는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임옥산은 장수현감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호를 국헌이라 하였다. 그는 조선 성종 때 대궐에 있어 달라는 임금의 청을 버리고 향리인 장수로 내려와 현감을 하였다. 산서면에 있던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해지자 속칭 비행기 고개를 넘어 어머니의 문병을 다녔는데 야밤에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게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기의 볼기를 칼로 떼어 어머님께 드렸더니 그 살과 피를 먹고 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남원서천리당산

10.3 Km    1999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

서천리당산은 당산나무, 돌장승, 솟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남녀 한 쌍인 돌장승은 운봉초등학교 서쪽 500여m 지점에 마주보고 서 있는 부부장승이며, 이 주변에 당산나무가 있다. 장승과 솟대를 함께 세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라도 지방에 남아 있는 당산 신앙의 한 형태로 원래는 이곳에도 솟대를 함께 세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마을 중앙에 있었던 솟대의 모습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부부장승은 마을의 허한 곳을 방어하고 서쪽을 진압한다는 의미에서 각각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이라 새겨져 있다. 방어대장군은 남장승으로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아래로 쭉 뻗은 송곳니가 있다. 가슴에 수염이 있으며, 귀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진서대장군은 여장승으로 머리에는 벙거지 모양의 돌 모자가 씌워져 있고 둥근 눈에 주먹코와 귀가 있다. 다른 여장승에서는 찾아보기 드물게 속눈썹이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합미성(장수)

10.3 Km    1693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 석천리

합미산성은 금남호남정맥 고봉인 팔공산(해발1147.6m) 남쪽 능선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성의 둘레는 430m 내외이고 계곡부를 감싸고 있는 포곡식 석성으로 할석을 잘 다듬은 견치석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합미산성은 후백제 때 성에 주둔한 군사들이 군량미를 보관하는 곳으로 이용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동안의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가야 유물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처음 쌓아진 시기는 삼국시대 가야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성벽은 견고하고 잘 다듬어졌으며 그 보존 상태가 온전하게 유지되어 그 시대의 축성기술을 알 수 있다. 산성의 특징은 본진인 내성이 있다는 것이다. 내성은 성곽의 동북 모서리에 돌출되어 있으며, 성 안에서는 가장 높은 조망대 구실을 한다. 북쪽 성벽에는 중앙에 북문터가 있어 밖으로부터 곧바로 내성에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내성의 남쪽과 외성 사이의 구석에는 외성에서 내성으로 들어가는 성문터가 있다. 이 성문과 외성 사이에 넓이 4m, 높이 2m의 우루대가 설치되어 있다.

서림공원

서림공원

10.3 Km    0     2024-01-19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 43

서림 공원은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에 있다. 서천리 서림 숲에 세워진 갑오토비사적비는 1894년 갑오동학혁명 당시 남원 동학군이 운봉으로 진출하려 하자, 일목(애꾸눈)장군 박봉양이 운봉의 민보군과 함양 등지에서 보내온 지원병과 합세하여 방아치와 관음치 전투에서 격퇴해 운봉을 지킨 공로로 문중에서 세운 사적비라고 한다. 서천리 서림숲에는 석장승 두 기가 양쪽에 남북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원래는 운봉이 배의 형국이라 배를 움직이는 짐대도 같이 있었으나 현재는 장승만이 남아 있다. 또한 지리산 둘레길 운봉-인월 구간 중 비전마을에서 서림 공원으로 이어지는 5km의 제방길은 너른 운봉 들녘을 적시는 젖줄인 람천을 따라 걷는 길로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외에 여러 종류의 동식물을 볼 수 있다.

권희문가옥

10.4 Km    1558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메길 9

산서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고택으로 현 수유주의 10대 조가 광해군의 사화를 피해 일가와 함께 오산리에 정착하면서 건립하였다.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1866년, 사랑채는 영조 49년(1733)에 지었다. 사랑채는 1875년 중수하였는데 안채를 세운 후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 1973년 문간채를 짓기 전에는 사랑채 화단 앞의 서문이 대문이었으나, 좁아서 마차가 드나들기에 어렵고 대문 방향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따로 문간채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옛 가옥의 중심은 사랑채인데 이 가옥은 안채가 중심이다. 전라도 지방 가옥의 일반적 특징인 일자형 구조가 아닌 ㄱ자형 구조에, 안채 전면 기둥은 둥근기둥인데 사랑채는 네모기둥인 것도 가옥의 중심이 안채임을 나타낸다. 안채와 사랑채 외에 서쪽채·아래채·문간채·바깥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안채, 사랑채, 서쪽채 등은 거의 원형 그대로이나 나머지 건물은 많이 변형되었다. 문간채는 블록을 쌓아 창고로 만들고 바깥채는 외양간, 창고, 목욕탕 등으로 사용된다. 아래채에는 돼지우리와 외양간 등 축사를 두고 사랑채 한쪽에는 여물청을 두었다. 권희문 가옥은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개조되었지만 안채와 사랑채는 거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