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양동 석불입상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아양동 석불입상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아양동 석불입상

아양동 석불입상

0m    19809     2023-06-10

경기도 안성시 내혜홀3길 7-1

안성시 아양주공아파트 107동 바로 뒤에 미륵 두 기가 모셔져 있다. 본래 아양동은 아롱개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아양동으로 부른다. 왼쪽 불상은 상체만 보이고 오른쪽 불상은 전신에 가깝게 노출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하체는 땅속에 묻혀 있다.왼쪽 불상은 상체의 키가 훌쩍 크고 꽃무늬가 선명한 보관을 썼으며, 어깨가 곧고 당당하다. 긴 목에 윤곽이 뚜렷한데 마치 화장을 막 끝낸 도시 미인처럼 화려하다. 하얀 자갈로 눈동자를 삼은 것도 특이하며, 반면에 오른쪽 불상은 기다란 관모를 쓴 것처럼 장식 없이 소박하고, 목이 짧아 어깨가 붙어버렸다. 옷도 법의가 아닌 관복처럼 주름이 적다. 얼굴의 윤곽도 생전 다듬어본 일 없는 시골 할아버지의 형상이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두기의 보살상을 두고 왼쪽 불상은 할머니, 오른쪽 불상을 할아버지 미륵으로 부른다. 안성 미륵에서 새로운 점은 미륵이 마을로 내려오고 민간신앙화되면서 기존의 형식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의와 관복이 혼용된 모습이고 수인의 개념이 깨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보름이 되면 아양동 미륵님께 치성을 드린다고 하는데 남자들은 풍물을 치고 여자들이 제를 주관한다고 한다.

바우덕이 묘

10.0 Km    20584     2024-02-01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용리

바우덕이 묘는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자리하고 있는 묘로, 안성 남사당패의 우두머리 자리까지 오른 유일한 여성인 김암덕의 묘이다. 안성 향토유적으로 2001년 지정되었다. 바우덕이는 재주 좋기로 손 꼽혔던 안성 남사당패의 유일무이한 여성 꼭두쇠(우두머리)로 염불, 소고춤, 줄타기 등 온갖 기예를 익혀 뛰어난 기량으로 유명하였다. 5살의 어린 나이에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남사당패에 맡겨져 성장했으며, 뛰어난 기량으로 15살의 어린 나이와 여자라는 조건에도 꼭두쇠가 되었다. 1865년 흥성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경복궁에 남사당패를 불러들였고, 이때 바우덕이는 경복궁에서 소고와 선소리로 뛰어난 공연을 펼쳐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 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았다. 이후 경기도 일대에서 순회공연을 이어가다가, 계속된 유랑 생활 끝에 폐병을 얻고 1870년 23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독정낚시터

독정낚시터

10.0 Km    0     2023-09-25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원당로 108

경기 안성시 원곡면 독정저수지에 위치한 낚시터이다. 독정저수지는 수 면적 약 36,000 m2, 수심 3~6m의 평지형 저수지이다. 개인 좌대, 수상좌재, 연안좌대, 잔교 좌대와 방갈로가 있다. 방갈로에는 TV, 에어컨, 온돌, 침구류 등이 있다. 주 어종은 붕어이다. 새우나 지렁이, 땅강아지 등 생미끼를 사용하면 메기와 장어를 낚을 확률이 높아진다. 가까이에 칠곡저수지, 반제낚시터, 고삼 호수가 있다. 평택 제천 간 고속도로 서안성 IC에서 차로 5분 거리다.

금광관광농원

금광관광농원

10.1 Km    20371     2023-12-05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현곡길 344

금광관광농원은 안성시 현곡리 칠현산 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상설 음식점과 숙박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어 야유회, 향우회, 동창 모임 그리고 가족 나들이 장소로 좋은 곳이다. 관광농원 입구에서 왼쪽에는 장박사이트가 별도로 있고 1, 2박을 하는 캠핑 사이트는 별도로 구분되어 있다. 이곳의 캠핑 사이트는 펜션을 포함하여 9구역 100여 개이며 원시림 같은 자연수림이 사방으로 드리웠고, 계곡물을 이용한 수영장, 그림 같은 가족 낚시터, 잔디구장, 식당 등을 고루 갖춰 놓아 캠핑을 즐기는데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식도락

식도락

10.1 Km    2     2023-08-21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안성맞춤대로 2090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정성껏 만든 반찬으로 1991년 개점한 한식당이다. 가벼운 식사로는 우거지국밥과 닭개장이 있다. 이 집의 주요리는 닭볶음탕이다. 닭에 상황버섯과 전복을 넣어 만든 상황전복삼계탕에 들어 있는 전복은 국물이 적당히 스며들어 입맛을 자극한다. 넓은 주차장이 있다. 안성파인크리크CC 맛집이다. 고삼호수가 인접해 있다.

안성 3.1운동기념관

안성 3.1운동기념관

10.1 Km    26020     2023-12-05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

안성 만세로에 있는 안성3·1운동 기념관은 안성지역의 만세운동과 관련한 유물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전국 3대 실력 항쟁지로 가장 격렬한 만세운동을 펼쳐 일제 식민통치기관을 완전히 몰아내고, 2일간의 해방을 이룩한 안성 4·1만세운동의 역사를 널리 알리며, 선열들의 숭고한 자주독립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후세들에게 나라사랑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기념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기획전시실, 야외 체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에서는 독립운동의 역사적인 자료를 실물 전시, 모형, 영상물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기념관 내에는 안성지역 독립운동가 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광복사, 안성3·1운동의 가치와 역사적 항쟁사를 표현한 기념탑인 안성3·1운동 기념탑 등이 있다.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안성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려주는 창작 인형극과 직접 무궁화를 관찰하고 재밌는 체험을 해볼 수 있는 나라사랑꽃 무궁화 등이 준비되어 있다.

모스트417

모스트417

10.1 Km    1     2023-01-19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959-3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에 있는 에펠탑과 야외 수영장이 있는 사진찍기 좋은 카페이다. 야외 수영쟝은 오로지 사진찍기를 위한 장소로만 사용한다. 야외의 에펠탑 위로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예쁜 사진이 나온다. 사진 촬영만을 위한 수영장 안에 사각의 징검다리를 거닐며 찍은 사진은 SNS용으로 제격이다. 약 3,800㎡의 규모로 주차공간이 여유롭다.서안성 IC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만세고개

만세고개

10.1 Km    1     2022-11-01

경기도 안성시 만세로 891

만세고개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과 양성면 사이의 고개이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원래의 이름은 성은고개 또는 양성고개이다. 3.1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1일 밤 원곡면민 1,000여명이 만세고개에 이르러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결의한 뒤 양성으로 돌진하였다. 양성 주민 1,000여 명과 합류하여 일본의 기관들을 불태우고 이 지역을 2일간 해방시켰다. 독립항쟁 운동을 기리기 위해 만세고개로 불리고 있다. 또한, 2001년 이곳에 안성 3.1운동 기념관이 세워졌다. 기념관 뒤로 백련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창진산장휴게소가 있다. 안성 3.1운동 기념관 주차장과 창진산장휴게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국사암

10.1 Km    21449     2024-02-01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텃골길 80-100

국사암은 안성 삼죽면 국사봉에 자리한 사찰이다. 안성은 미륵(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 불이 많아 미륵의 고장으로도 불린다. 이는 미륵부처를 주불로 숭상하는 법상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현재 등록된 미륵만 18기에 이른다. 칠현산과 마주하고 있는 삼죽면 국사봉 궁예미륵은 [국사암 석조여래입상]이라고도 불리며 궁예가 좌우로 문관과 무관을 거느린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궁예가 안성 죽산 일대에서 후고구려를 건국하면서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석조여래입장의 크기는 약 3m로 머리에는 3단의 원형으로 만든 보개(불상의 머리 위를 가리는 장식)가 올려져 있다. 불상의 얼굴은 타원형으로 귀는 크게 만들어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진천 배티 성지

진천 배티 성지

10.2 Km    30190     2023-12-10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배티로 708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 위치한 배티성지는 많은 순교자의 종교 정신을 기리고 기도하는 장소와 피정의 집으로 활용되었으나 현재는 십자가와 묵주만이 남아 천주교 박해의 정도를 가늠케 한다. 배티라는 말의 유래를 살피자면 동네 어귀에 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것이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설로는 조선 영조 때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 노인 이순곤이 이끄는 주민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 쪽으로 향하다 오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 패전하였다는 데서 패치라 불렸고 훗날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1870년부터 다시 신앙이 싹터 1884년에는 선교사들이 진천에 배티, 삼박골, 용진골, 새울, 굴티 등 5곳에 공소를 설정하게 되었으며 1890년에는 배티 공소에 [교리 학교]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신자들이 하나, 둘 떠나 배티에는 신자들이 생업을 영위하던 옹기점과 무명 순교자의 묘 만이 남아있었다. 이곳은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 중심지였고 최초의 조선 대목구 신학교였으며 박해기에 신자들의 교우촌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천주교 성지로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으며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의 길을 걸으며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얻어 가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