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및 정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및 정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및 정판

0m    1506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임삼로 1590-20

임실의 효충서원 안에는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가 있다. 정려비란 충신·효자·열녀 등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우는 비이다. 효충서원 경내에는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정려비 2기가 서 있고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이것은 조선 철종 6년(1885)에 세운 것으로, 이조참판 서유훈이 왕의 명을 받들어 건립하였다. 김복규는 효심이 지극한 이로 16세에 부친상을 당하였으나, 묘지를 정하지 못한 채 밤낮으로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꿈에 나타난 도사가 일러준 대로 약을 구해 아버지께 다려드리니 다시 깨어나 천수를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효행을 듣고 나라에서는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의 벼슬을 내려주었다. 그의 아들 기종 역시 아버지에 대한 효가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하자 3년간을 묘 옆에 초막을 짓고 살며 애통해하였다. 그때의 울음소리가 마치 호랑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호동(虎洞)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앞면에는 각각 비의 제목을 세로로 새겼는데,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이다.

효충서원

1.8308121863084217m    1557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임삼로 1590-20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효충서원은 임실군 임실읍에 있는 서원으로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효행을 기리는 서원이다. 조선 철종 6년(1885)에 세운 것으로, 이조참판 서유훈이 왕의 명을 받들어 건립하였다. 서원 안에는 강당과 효충묘, 고직사와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정려비 2기가 있다. 정려비란 충신·효자·열녀 등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우는 비이다. 이 정려비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에 지정되어 있다.

영천서원

10.1 Km    1547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3길 33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이다. 1619년(광해군 1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기묘사화 때 희생된 안처순을 중심으로 정환, 정황, 이대병 등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1686년(숙종 12)에 임금이 친필로 [영천(寧川)]이라는 현판을 하사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이곳은 남원부 48방 중의 하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실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서원은 48방 내의 30여 서원 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권위가 높아 우수한 학자들이 멀리에서 몰려왔다고 한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광복 후에 후손들이 복원한 것이다.

학정리석불

10.3 Km    15208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학정2길 117-8

학정리석불은 삼계면 학정리 성문안 마을에 있는 석불입상이다. 세련미보다 둔중한 느낌이며 고려시대의 석불로 추정된다. 석불은 처음에 성문안마을 밭 가운데 하반신이 땅에 묻혀있는 상태였으며, 대좌와 광배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었다. 이후 석불 발굴조사를 시행하였고 석불의 높이가 245㎝인 것이 밝혀졌다. 2003년부터 석불의 보호를 위하여 인근 성문사 법당으로 석불을 옮겨 임시 보존하고 있었고, 석불의 원래 위치로 요구하는 민원이 제기됨에 따라 원래 위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지에 이전 설치하였다. 그리고, 도지정문화재보수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보호각을 지었다. 석불의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고, 두 귀는 도톰한 양 볼 아래까지 처져 있고 턱은 두텁게 생겼다. 가느다란 두 눈은 양쪽 끝이 약간 치켜 올라갔으며, 입은 작은 편이나 미소를 띠었다. 전체적으로 둔중하고 풍만한 생김새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특징은 굵은 목, 팽팽한 상반신에도 나타나 있다. 팽만한 체구이지만 세련미보다는 둔중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어서 시대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요산공원 (옥정호 요산공원)

요산공원 (옥정호 요산공원)

10.7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운암면 입석1길 59

옥정호에 위치한 요산공원은 2009년부터 9년간 진행한 붕어섬 주변 생태공원 조성 사업으로 만들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낙향한 성균관 지사 최응숙 선생이 세운 누각인 양요정(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7호)과 섬진강댐 건설로 수몰된 사람들의 슬픔을 달래고자 세운 망향탑이 있는 곳이다. 요산공원은 27,392㎡의 크기로 공원 곳곳에 심어놓은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어 풍경이 아름답고, 옥정호를 끼고 걷는 데크로드 산책로가 있어 가족과 연인과 함께 걷기 좋다. 주변 국사봉 전망대에 올라가 붕어섬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

사동서원

10.8 Km    168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사창길 35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사동서원은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에 있는 서원이다. 이 사우는 조선 1847년(헌종 13)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던 것을 1957년 복설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지역에 거주하던 김해 김씨의 선조 가운데 김준손, 김기손, 김일손, 김대유, 김치삼, 김정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복설하면서 김극일을 추배하고,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김종직을 추배하고 김극일을 주벽으로 하였다. 현재의 사동서원 건물은 1986년 중건하였으며, 사당 3칸, 강당 5칸,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다.

저스트글램핑

10.9 Km    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강진면 이윤길 76

임실군에 위치한 글램핑장이다. 한국 시골의 느티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아름답고 아늑한 몽골 게르가 있다. 게르는 캔버스 해먹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시원한 물소리를 즐길 수 있는 작은 강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엠퍼러 텐트가 준비되어 있어 감성적인 소품들과 함께 사진 찍기 좋다. 그리고 버블호텔이 있어 동화 속에 온듯한 이색경험도 가능하다.

권희문가옥

11.0 Km    1558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메길 9

산서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고택으로 현 수유주의 10대 조가 광해군의 사화를 피해 일가와 함께 오산리에 정착하면서 건립하였다. 상량문에 따르면 안채는 1866년, 사랑채는 영조 49년(1733)에 지었다. 사랑채는 1875년 중수하였는데 안채를 세운 후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 1973년 문간채를 짓기 전에는 사랑채 화단 앞의 서문이 대문이었으나, 좁아서 마차가 드나들기에 어렵고 대문 방향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따로 문간채를 세웠다. 일반적으로 옛 가옥의 중심은 사랑채인데 이 가옥은 안채가 중심이다. 전라도 지방 가옥의 일반적 특징인 일자형 구조가 아닌 ㄱ자형 구조에, 안채 전면 기둥은 둥근기둥인데 사랑채는 네모기둥인 것도 가옥의 중심이 안채임을 나타낸다. 안채와 사랑채 외에 서쪽채·아래채·문간채·바깥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었다. 안채, 사랑채, 서쪽채 등은 거의 원형 그대로이나 나머지 건물은 많이 변형되었다. 문간채는 블록을 쌓아 창고로 만들고 바깥채는 외양간, 창고, 목욕탕 등으로 사용된다. 아래채에는 돼지우리와 외양간 등 축사를 두고 사랑채 한쪽에는 여물청을 두었다. 권희문 가옥은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개조되었지만 안채와 사랑채는 거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효자임옥산정려각

11.0 Km    1542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이 효자각은 소재지에서 임실 성수면 방면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도로변에 있는 것으로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으로 된 맞배지붕이다. 현재 효자각의 안에는 "효자주부임옥산지려”라는 명문이 음각된 비석과 중수와 관련된 5개의 현판이 벽면에 걸려 있다. 그리고 이 효자각의 서쪽에는 1990년에 세운 임산옥산정려라는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임옥산은 장수현감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호를 국헌이라 하였다. 그는 조선 성종 때 대궐에 있어 달라는 임금의 청을 버리고 향리인 장수로 내려와 현감을 하였다. 산서면에 있던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해지자 속칭 비행기 고개를 넘어 어머니의 문병을 다녔는데 야밤에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하게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기의 볼기를 칼로 떼어 어머님께 드렸더니 그 살과 피를 먹고 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남평문씨열녀비

11.1 Km    1542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남평문씨열녀비는 산서면 소재지에서 임실 성수면으로 가는 도로의 하오마을 입구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정려각 안에는 ‘열녀학생권희언처남평문씨지려’라고 새긴 비석과 남쪽 벽면에는 문 씨 정문기가 걸려 있다. 이 정문기의 내용에 의하면 남평 문 씨는 시집온 지 3일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살다가 양자를 두었으나 양자마저 병으로 죽게 되자 그도 3년 만에 죽었다. 그는 유언에서 내가 죽게 되면 내 남편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라고 하여 그 후손들이 문 씨의 유언에 따라 남편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고 이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 정려각은 높이가 70cm 정도 되는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지붕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