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향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광주향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광주향교

광주향교

218m    34286     2018-09-28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5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서석산(瑞石山) 장원봉(壯元峰) 아래에 창건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호환(虎患)이 있어서 동문 안으로 옮겨 세웠다가, 1488년(성종 19)에 수해(水害)로 현감 권수평(權守平)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에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그 뒤에 중건한 것이다. 1974년에 대성전을 보수하고 단청하였으며, 1976년에 동·서재와 1978년에 명륜당을 보수하고 1981년에 담장 등을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 전적은 189종 306책으로 주로 경서와 문집류이며, 필사본인 ≪관안 官案≫·≪광주유림안 光州儒林案≫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광주공원(구동공원)

광주공원(구동공원)

274m    31003     2018-09-27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062-672-0660

* 시민들의 쉼터, 광주공원(구동공원) *
광주공원은 광주시의 제1호 공원으로 시민들이 즐겨찾는 휴식공간이다. 옛날에는 성거사가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던 곳인데 현재는 현충각과 광주시립 박물관, 시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복원된 사직단과 광주방송총국(KBS), 경찰충혼탑, 연파정, 전통국궁 수련장인 관덕정,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팔각정 등이 있다. 현충탑을 중심으로 한 공터는 노인들의 휴식처로 애용된다. 광주공원은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 각종 수목과 화초를 이용한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매년 4월 중순이면 벚꽃이 만발한다.
* 광주공원의 역사와 유래 *
광주공원은 원래 나라의 안전과 풍년을 기원하며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렸던 사직단이 있던 곳인데, 1894년 제사가 폐지되고 1960년대 말에 사직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은 헐리고 말았다. 그 뒤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사직단을 복원하여 1994년 4월 100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했다.

광주공원 사적비군

광주공원 사적비군

363m    33262     2019-04-05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지역의 사적비를 한 곳에서 만난다, 광주공원 사적비군

광주공원의 사적비군은 종래 광주 시내 여러 곳에 있던 사적비를 광주공원으로 옮겨 놓은 것을 말한다. 훼손되어 가고 있던 선열들의 유적비를 1957년 광주공원 입구에 옮겼다가 1965년 다시 동쪽 언덕에 광주공원 내에 옮겨진 사적비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 도원수충장공 권율 창의비(都元帥忠壯公權慄倡義碑)
* 도순찰사 원공두균 선정청덕비(都巡察使元公斗杓善政碑)
* 관찰사 윤공웅렬 선정비(觀察使尹公雄烈善政碑)
* 관찰사 이공근호 선정비(觀察使李公根湖善政碑)
* 도지사 이공기세 선정비(道知使李公琦世善政碑)
* 도지사 신공용우 선정비(道知使申公庸雨善政碑)
* 제헌최한익선생 공덕불망비(濟軒崔漢益先生功德不忘碑)
* 어사여규익 구폐선정비(御使呂圭益球弊善政碑)
* 목사 홍공명원 거사비(牧使洪公命元去思碑)
* 목사 양공응정 선정비(牧使梁公應鼎善政碑)
* 목사 한성우 애민선정비(牧使漢聖佑愛民善政碑)
* 목사 이휴세 근청덕휼민선정비(牧使李携世根淸德恤民善政碑)
* 목사 홍공양묵 선정비(牧使洪公養默應善政碑)
* 목사 서후경 순청덕휼민선정비(牧使徐後勁淳淸德恤民善政碑)
* 행군수 권공재윤 청덕불망비(行君守權公在允淸德不忘碑)
* 행군수 홍란우 구폐선정비(行君守洪蘭祐球幣善政碑)
* 찰방 송공훈 권학창덕거사비(察訪宋公薰權學德恤去思民碑)
* 찰방 은공성호 영세불망비(察訪殷公成浩永世不忘碑)
* 찰방 박공종영 우덕선정비(察訪朴公鐘瀯祐德善政碑)
* 찰방 전공명래 구폐영세불망비(察訪全公明來球幣永世不忘碑)
* 우송홍우선 기적비(友松洪祐選記績碑)
* 서간거사 안공규용 의적비(瑞幹居士安公圭容義蹟碑)

광주시민의 1호 공원인 광주공원에 대하여 광주공원은 광주시의 제1호 공원이다. 옛날에는 성거사가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던 곳인데 현재는 현충각과 광주시립 박물관, 시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현충탑을 중심으로 한 공터는 노인들의 휴식처로 애용된다. 광주공원은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1974년 새로 설립한 광주시립 국악원과 조선조 이래의 생활도구를 전시한 민속관이 광주시립박물관에 병설되어있다.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379m    31007     2019-04-25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338번길 7

* 안정미와 수려함이 넘치는 고려시대 탑, 광주서오층석탑(光州西五層石塔) *

광주공원 안에 거북머리와 같이 돌출된 지형 위에 세워져 있다. 탑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으나, 전체적인 상태는 매우 양호한데, 통일신라시대의 이중기단 양식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탑의 오층 몸체부 중 초층을 다섯 개의 돌로 짜맞춘 것이 다른 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며, 지붕돌의 추녀와 몸체부의 알맞은 비례,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각층의 비율이 크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면서도 튼튼한 안정미와 수려함이 넘치는 고려 시대 탑으로서, 뛰어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 고려시대 석탑의 모습을 보여주는 탑의 구조 *

광주서오층석탑의 기단부는 통일신라 시대의 탑이 대체로 2층기단으로 되어있는 것과는 달리 고려시대 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단층으로 간략화되고 있다. 탑신부는 1층의 옥신석만 빼고 각층마다 옥신석과 옥신석이 모두 한 개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각층의 체감률이 적어 탑의 인상이 날렵하고도 높게 보인다. 1층 옥신석은 2단의 별석으로 짰는데 하단은 4매의 돌을 깎아 맞추었고 상단은 한 개의 돌을 다듬어 만든 이형탑이다. 이런 형식은 고려시대의 탑에서만 볼 수 있다.

옥개석은 추녀가 넓은 편이며 추녀 네 귀의 위아래가 모두 뒤쪽으로 되바라지도록 전각을 주고 있고, 층받침은 고려탑의 정형대로 모두 4매이다. 옥개석은 받침마다 모서리에서 10㎝씩의 턱을 주어 체감에 균형미를 주고 있다. 2층 옥신석도 옥개석과 마찬가지로 1층 옥신보다 높이가 현저하게 줄고 있다. 탑신 위에 있었던 상륜부는 모두 상실되었다. 이 탑은 1961년에 해체, 보수했는데, 이때 2층 옥신석의 위쪽에 사리공이 발견되었고, 그 속에서 원형이 잘보존된 금동전각형 사리 장엄구를 찾아냈다. 이 사리구는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탑과 관련되 전설 *

탑이 있는 곳은 원래 성거산 또는 성구강이라 불리웠며, 산의 모양이 거북처럼 생겼다고 전해진다. 거북이 광주를 이롭게하는 상서로운 동물이라 생각하여 광주를 떠나지 못하도록 거북의 꼬리 부분인 현향교 위치에 성거사를 지을 때 완성 단계에서 무너지곤 했는데, 도승의 말을 듣고 거북의 목 위치에 오층 석탑을 세운후로 절이 허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거목한정식

거목한정식

421m    25936     2019-03-19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364번길 3-6
062-672-0333, 0444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기와가 있는 돌담이 나오고,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50년 된 태산목이 그늘을 드리우는 한정식집인 거목 한정식.
봄에는 철쭉꽃, 가을에는 국화꽃 향기가 가득한 이 곳은 남도의 맛을 정갈하고 소박하게 내놓고 있는데, 10년의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맛으로 계절에 따라 식단에 변화를 준다.

4인 기준 한상으로 차려지고 개별적인 일품메뉴는 없다. 구절판과 삼합, 삼계탕을 필두로 모듬전, 대하, 잡채, 두릅, 불고기, 조기 등 각종 해산물요리를 먹는다면 맛있고 든든한 식사가 될 것이다. 또한 꽃게찜, 조기, 더덕철판이 추가되는 다음 단계는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식단이다. 가장 큰 상에는 연포탕, 용봉탕를 비롯해 양팽이구이와 돼지애저까지 곁들여져서 회갑연 같은 집안 대소사 모임에 좋은 식단이다. 마당 한쪽에 있는 가마솥에서는 한정식단의 마지막을 마무리 하는 대통밥이 나오는데, 대통밥에서는 대나무 향이 은은하게 배어나와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어 식사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관덕정의 각궁

관덕정의 각궁

511m    28945     2019-01-21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

정신과 신체를 동시에 건강하게 해주는, 관덕정의 각궁 궁술은 무사뿐만이 아니라 선비들도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 요건이었다. 이러한 활이 요즘에는 생존이나 방비기능은 완전히 상실했고, 스포츠와 취미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에도 스포츠와 취미로서 활의 명맥을 이어주는 곳이 있는데, 사직공원에 있는 활터 관덕정이 그것이다. 관덕정의 사범이자 전남에서는 유일하게 활을 만들고 있는 권태은 씨는 호라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경북 예천이 고향으로 3대째 활을 만들고 있는데, 광주에 자리를 잡은 것은 23년 전이다. 경상도에서 활을 만들면 팔러나가는 곳이 대부분 전라도이므로 아예 광주로 옮겨와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권씨의 이야기다. 옛날에는 활의 재료와 쓰임새에 따라 무척 다양했지만 요즘에는 각궁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해 주고 있다.

* 전통이 실려있는 각궁이란? *

후궁·장궁(長弓)이라고도 한다. 각궁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크게 2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전쟁이나 사냥에 쓰인 것은 궁간상(弓幹桑)·뿔·힘줄·아교·실·칠 등 6가지로 만들고, 운동이나 오락으로 쓰인 것은 궁간상·참나무·대·벚나무·뿔·힘줄·아교 등 7가지로 만들었다. 강(强)·중(中)·연(軟)의 구별이 있어서, 남녀 누구나 자신의 힘에 맞는 것을 쓸 수 있었다.

사직공원(광주)

사직공원(광주)

569m    41866     2018-07-24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

* 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 사직공원(광주) *
사직공원의 터는 원래 사직단이 있던 곳이다. 사직단이란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여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이 장소는 조선 태조 3년에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사직단을 설치한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1894년 제사가 폐지되고 1960년대 말에 사직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은 헐리고 말았다. 그 뒤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사직단을 복원하여 1994년 4월 100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했다.
사직공원은 각종 수목 또는 화초들의 조경이 잘되어 있으며 특히 매년 4월 15일을 전후해서 벚꽃이 만발, 광주시는 이 무렵이면 밤에 전등을 가설하여 시민들이 밤에도 벚꽃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사직공원의 볼거리 *
공원 내에는 1993년 복원된 사직단과 광주방송총국(KBS), 경찰충혼탑, 양파정(양림동에 살던 정락교씨가 지어서 광주시에 기증한 것), 사장(射場)인 관덕정,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팔각정이 있다. 각종 수목과 화초를 이용한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오색찬란한 광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타워가 있다.

사직단

사직단

571m    33757     2019-06-05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길 49

* 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 사직단(社稷壇) *

갑오년(1984) 이후 광주의 여제와 함께 폐지되었으며, 한말에는 사직단을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동물원이 들어서면서 그 자취가 없어졌는데, 1993년 광주시가 사직단을 복원, 1994년 광주 향우회 회장(최기영)에 의해 1백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되었다. 사직단은 국토의 신과 오곡의 신, 두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다. 국토와 오곡은 민생의 근본이므로 삼국 시대부터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사직단을 설치하여 친히 왕이 나가서 제사를 올렸다. 지방에서는 성주가 제주가 되었으므로 광주 목사가 매년 제사를 주관하였다. 사직단은 종묘와 함께 신성시되어 종사(宗社)라고도 했다. 사직제는 매년 맹춘(정월) 상신일에 기고제(그해 풍년을 비는 제), 중춘(음력6월), 중추(음력 8월) 상무일, 납일(음력 12월 8일)걸쳐, 네 차례 거행되었으며, 가뭄에는 기우제, 비가 많이 오면 '기정제', 눈이 오지 에 않으면 '기설제'를 지냈다. 또한 사직제는 혈제(血祭)라 하여 제수에 돼지머리나 양머리를 날것으로 봉헌했다.

* 사직단이 있는 사직공원에 대하여 *

사직공원의 터는 원래 사직단이 있던 곳이다. 1894년 제사가 폐지되고 1960년대 말에 사직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사직단은 헐리고 말았다. 그 뒤 사직단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자 1991년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기고 사직단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직공원은 각종 수목 및 화초들의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 특히 매년 4월 15일을 전후해서 벚꽃이 만발, 광주시는 이 무렵이면 밤에 전등을 가설하여 시민들이 밤에도 벚꽃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시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KBC 광주방송

0m    9510     2019-05-27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 87

* 호남지역 최초 TV 민영방송사. KBC 광주방송 *

1995년 5월 개국한 KBC광주방송은 호남 최초 TV 민영방송으로 출범해 18년 동안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호남지역의 대표방송으로 자리매김했다. 광주방송은 청소년을 위한 방송체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방송국 1층에 위치한 체험센터는 방송제작현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방송국에 도착하면 방송이 제작되는 전반적인 과정을 영상으로 시청하고 체험관으로 이동하게 된다. 합성영상 제작을 위한 블루 스크린 앞에서 다양한 포즈로 체험을 즐길 수 있으며, 뉴스 세트의 앵커 자리에 앉아 앵커체험도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음향과 화면조정을 주관하는 시설과 각종 방송장비도 직접 조작해볼 수 있다.

현충탑(광주)

318m    26338     2018-07-24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062-672-0660

* 한국전쟁 당시 호국영령을 기리는 탑, 현충탑 *
조선시대 때 성거산이라 일컬었던 광주공원은 사직공원과 함께 광주시내에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시민의 휴식처이다. 이곳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숨진 사람들의 충성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현충탑이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광주, 전남지역의 전몰 호국용사 15,867명(군인 10,745명, 경찰 5,122명)을 모셨으나, 위패부는 모두 없다.
현충탑의 규모는 가로 5m, 세로 3m, 높이 22m로써 이곳에서는 매년 현충일인 6월 6일날 호국 영령들의 높으신 뜻을 기리기 위해, 추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광주광역시 공원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 현충탑 인근의 또다른 탑, 서오층석탑 *
현충탑이 있는 광주공원 내 서오층석탑은 고려 시대 탑 전체적인 상태가 매우 양호한데, 통일신라 시대의 이중 기단 양식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탑의 오층 몸체부 중 초층을 다섯 개의 돌로 짜맞춘 것이 다른 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다. 또한 지붕돌의 추녀와 몸체부의 알맞은 비례,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각 층의 비율이 크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면서도 튼튼한 안정미와 수려함이 넘치는 뛰어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빛고을시민문화관

404m    18621     2018-10-30

광주광역시 남구 천변좌로338번길 7

빛고을시민문화관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새로운 복합문화시설로서 시민 정서 함양과 지역 문화예술의 창달을 위해 시민본위의 공연·전시, 쾌적하고 친숙한 문화예술공간 제공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 개관일 : 2010년 2월

남평문씨 쌍효문

564m    23324     2018-11-01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안길 9

* 문장갑, 장섭 형제의 효심을 기리는 곳, 남평 문씨 쌍효문 *

쌍효문은 자식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고 널리 선양하는 유적이다. 남평 문씨 쌍효문은 현재 내부의 좌측문을 개조하여 관리자 김재선 씨가 거주하고 있다. 내부에는 정려기(程閭記) 외에 12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효자 문장갑(文章甲) (1798-1832)과 문장섭(文章燮)은 형제로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한 인물이었다. 부친의 병환에 지성으로 2년 동안을 한결같이 간호하였으며, 임종에 당하여서는 단지수혈(斷脂輸血) 하는 등 정성을 다했다. 마침내 상을 당하자 예제(禮制)대로 장사, 향당(鄕堂)의 효자로 칭해지면서 국가에서는 명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 남평 문씨 시조 문다성의 탄생일화 *

남평 문씨의 시조 문다성(文多省)에 관해서는 탄생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472년(신라 자비왕 15) 남평현(南平縣) 동쪽에 장자지(長者池)라는 큰 못가에 큰 바위가 솟아 있는데 그 위의 석함 속에 피부가 맑고 용모가 아름다운 갓난아이가 들어 있었다. 이를 기이하게 생각한 군주가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그런데 불과 5세에 문사(文思)에 저절로 통달하고 무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 문(文)을 성으로 삼게 하고 이름을 다성(多省)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대장군(大將軍)을 거쳐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으로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져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남평으로 하였다.